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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속 책 한 권] `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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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뚜벅이 작성일70-01-01 09:33 조회3,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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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속 책 한 권]

`끌림`

2006.06.08. 목요일
노매드 관광청장 뚜벅이
(ddubuk@nomad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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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_A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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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서쪽 마공(馬公)섬을 여행 중이었어. 우리나라 통영을 닮은 평화로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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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안섬은 마공에서 18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러니까 매물도와 같은 작은 섬이었어. 섬에서 더 작은 섬으로 간다는 것은, 늪과 같은 유혹이었지. 여행자는 마치 도망꾼처럼 조금이라도 더 세상의 끝을 원했던거야.

그 섬에는 아주 진기한 거북이가 살고 있다고 했지. 봄의 나뭇잎처럼 녹색의 빛을 내뿜는 거북이.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 섬이 더욱 가고 싶어졌어. 나아른한 신화가 보고 싶어졌어.

한 시간 반의 뱃길은 쉽지 않았어. 파도는 거셌고, 롤러코스터가 되버린 배는 심하게 요동을 쳤어. 사람들의 몸은 솜처럼 지쳐가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체 구역질을 하기까지 했어. 바람으로 속을 달래려고 배의 후미에 앉아, 들이치는 바닷물에 온몸을 적시면서도 나는 계속 녹색 거북이를 떠올리고 있었지. 신화를 찾아 가는 여정이, 쉬울 수는 없는 것이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 섬은 멈춰 버린 벽시계와 같은 풍경이었어. 다듬어지지 않은 목초와 옛터의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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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휑한 풍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웅장한 건물 한 채.

바로 '녹색거북이보호소'라는 곳이었어. 그런데, 그 건물의 내부 역시 휑한 바람만이 불고 있더군. 이 섬의 건물은 모두 그래야 한다는 듯이, 방금 누군가 짐을 모두 챙겨 떠나가 버린 듯한 모습으로 18리 뱃길을 헤쳐온 여행자들을 당황하게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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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출구 바로 앞 유리관 안에, '달랑' 있었어, 그러니까 이 큰 건물안에 단 두 마리의 거북이만이 놓여져있었던거야. 게다가, 녹색의 빛을 뿜어대지도, 영묘한 신화의 기운도 발산하지 않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거북이였어.

넌,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라고 거북이에게 묻자, 넌, 대체,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거니? 라고 두 놈이 내게 말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북이에게 살의를 느꼈던 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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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같은 배를 타고 다시 마공에 돌아와서, 호텔방에 누운 그 밤.

배낭에서 책 한 권을 꺼내들었지. 거북이처럼 지루한 동작으로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참 신기하기도 하지. 거북이가 거기 또 있는거야.

#006. 거북이 한 마리

.......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마음 아프게도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이 많아 아주 먼 나라에 가서 살게 된 사람이 있다.

.......

쓸쓸한 그 사람은 먼 타국에 혼자 살면서 거북이 한 마리를 기른다.

매일매일 거북이한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말을 붙인다.

그럴 일도 아닌데 꾸짖기까지 한다.

불 꺼진 집에 들어와 불 켜는 것도 잊은 채 거북이를 찾는다.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란 확신으로 거북이에게 기댄다.

근데 왜 하필 거북이었을까?

'거북이의 그 속도로는 절대로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보다도 아주 오래 살 테니까요.'

도망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먼저 거북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이 두 가지 이유가 그 사람이 거북이를 기르게 된 이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심하게 다친 사람의 이야기.

어떤 이는 거북이에게 살의를 느끼고, 어떤 이는 거북이에게 기대며, 또 어떤 이는 거북이에게 기대는 사람을 따뜻하게 기록하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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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록자가 바로 '이병률'이라는 시인이야.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 작가이기도 했던 이 사람은,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고 주문을 외운 후, 다시 돌아와 이 책을 냈지. 책 이름, 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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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2005년까지 이병률을 끌어당겼던 지도위 공간들이 매 장에 등장하지만, 이 책은 여행지의 이야기가 아니야. 바로 사람의 이야기지. 시처럼 예쁜 산문과 넘긴 책장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멋진 사진보다, 인간을 향한 작가의 그리움과 애정이 진정, <끌림>을 향기 있는 책으로 기억시키는 이유겠지. 이 책 한 권이 배낭 안에 들어감으로써, 배낭 속 전체가 꽃 내음으로 채워지는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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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 페루에서 쓰는 일기 중) ' 나는 사람을 믿기 위해 끊임없이 다닐 것이고 그렇게 다님으로써 사람의 큰 숲에 당도하기를 희망한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놓고, 책의 후미에 나는 이렇게 메모했어.

한 권의 예쁜 여행 일기장과 사랑에 허기진, 그러나 투명한 눈으로 인화한 사진첩의 감흥. 여행 중 만나는 안개비처럼 공항 대합실의 지루한 시간에 감성의 촉촉함을 선물해 줄, 딱, 그만큼의 책.

자칫 관념적일 수 있는 이런 짧은 산문이 생생함으로 전해오는 것은, 그 배경이 여행지였기 때문일거야. 그리고 그 글이 쓰여진 곳도 여행지이기 때문일거야. 머물던 자리에서 떠난 사람의 글이 진솔할 수밖에 없는 이유 한 가지, 홀로 여행자는 결코, 자신을 사기 치거나 포장하지 않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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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와 이 책을 다시 보니, 한 여백의 귀퉁이에 병률에게 보내는 답례처럼 꼼꼼한 낙서가 있네. 남의 외로움을 관음증으로 즐긴 자가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 ' 읽는 행위' 중에 느껴보는 '쓰고 싶음'에의 끌림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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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자를 먹을 때는

오후 네 시의 티타임이거나

한가한 일요일 어느 시간이 아니다

깊은 숙면의 한 끝, 얼추 새벽 두세 시

수증기처럼 밀고 들어온 외로움의 허기에

손을 쭉 뻗어 닿은 그 지점

바삭이는 봉투에서 달콤한 과자를 꺼내

외로움을 부두듯 아삭! 하고

입 근육을 헤 뭉친다

아침, 침대 옆에 개미처럼 흘린

과자 부스러기는

조각난 외로움의 파편들이다.

마흔이 넘은 사내도

곰 인형을 안고 자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02.APR. 2006. 마공에서 카오슝 가는 길.

"끌림" 도서 구입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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