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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의 Turkey Story] 3. History & Heritage 역사와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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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5-07-28 09:55 조회9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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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istory & Heritage: 역사와 유물
 
 
터키를 여행하면서 오늘 날의 국경과 지도적 공간 개념을 허물지 않는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진다. 또한 유럽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없다면 여행 내내 수도 없이 등장하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과 아고라,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과 신전들, 기독교 성화 위를 덮은 쿠란의 문구 들이 계통 없이 뒤죽박죽된다.
 
 
유물터를 운동장 삼아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아나톨리아 반도는 초기 그리스 문명이 시작되고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되기 까지 오랫동안 그리스인들이 주인이었던 땅이었다. 그리스 유물을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서로마가 제국의 이름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에는 로마의 속주였던 땅(BC 146년)이었으니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집단거주지, ‘차탈회육’ 이 발견된 곳이고 인류 최초로 철을 만든 히타이트 문명(BC 2000년 경)이 태동한 곳이다. 선사시대의 유적을 확인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을 보려면 터키를 먼저 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터키여행은 관념을 구체적 수치로 만나는 기회이다. 우리는 기원전의 감각을 신화로서 만나왔다. 환웅과 웅녀는 단군 신화 속에서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로 등장한다. 그것이 기원전 2333년의 이야기다. 한반도의 고대사가 일제의 악의적 왜곡과 사학자의 정치적, 이념적 노선에 따라 분탕질 되어가는 동안, 관념의 수치와 신화로서 기원전을 암기하고 받아들였던 탓에 아크로폴리스, 로마 제국의 목욕탕 등 구체적 유물로 기원전의 세계를 실감하는 것은 충격이며 지적 즐거움이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47km  떨어진 곳의 아스펜도스에는 원형극장이 있다.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은화를 만들어 쓸 정도로 번성했던 이 지중해 도시는 이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의 시대를 바람처럼 거치면서 풍화되었다. 지금은 작은 마을로 남았지만 과거의 영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원형극장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찍부터 연극이 발달했다. 그들은 청명한 지중해 기후를 즐기며 야외극장에서 축제를 했고 토론을 했고 비극과 희극의 경연대회를 했다. 호전적인 로마인들은 극장을 검투사 경기장의 용도로 더 많이 활용했다. 그리스는 언덕과 경사면을 깎아 극장을 만들었고 로마는 평지에 아치를 받쳐 극장을 완성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성당을 질리게 본다는데 터키 지중해 여행에서는 원형 경기장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경기장이 저마다의 다름으로 다가오는 탓에 성당처럼 질릴 겨를은 없다. 건축물의 형태가 다르고, 훼손의 정도가 다르며, 공명의 상태가 다르고, 주변의 산세가 다르다. 무엇보다, 이미 기원전에 ‘보고’ ‘보여지는’ 쌍방향의 문화를 즐겼다는 것이, 여전히 기원전 하면 돌도끼를 든 원시인을 생각하는 내 머리에는 질투 섞인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은 명상록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161-180년) 재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최대 2만 명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극장이다. 보존 상태도 완벽하지만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객석 어디서든 잘 들리는 공명감이 미스터리한 건축 기법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안탈리아 좌측, 아나톨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 볼록하게 튀어나온 곳이 ‘리키야’다. 그리스어가 아닌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할 정도로 독창적 문명을 키워온 땅이다. 리키아의 중심도시 미라의 고대 유적지는 뎀레(Demre)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도 원형극장이 있는데 고대 유적지의 초입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절벽 위의 무덤들이다. 고대의 리키아인들은 죽은 자를 땅에 묻지 않고 수직 절벽에 굴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그 안에 석관을 안치하는 매장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시신을 땅에 묻으면 썩을 것이고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를 믿었던 그들에게는 영혼의 집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위가 높으면 더 높은 절벽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는 하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부활도 빨라질 것이라는 순박한 믿음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삶의 한쪽 면이 죽음일 텐데, 죽음을 외면하고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그 죽음을 의식하고 방어하고 준비한다. 어린 시절 나는 어렴풋하게 나의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화장을 두려워했다. 죽은 내가 불길을 뜨거워하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이었다. 남들은 다 죽었다고 하는데, 정작 죽은 나는 내 놈의 감각을 느끼고 있다면, 즉 그런 것이 죽음이라면 이것는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닐까라며 화장이 막연하게 겁이 났다. 무지했지만 순수했던 아이의 두려움, 나는 리키아의 무덤을 보며 수 천 년전에 살았던 리키아 사람들의 순망함을 보고, 정작 그들을 묻었던 사람들의 도시는 무덤 아래 땅 밑에 묻혀버린 그 기묘한 아이러니를 목격한다.
산 위의 무덤은 남아있고 도시는 사라진 것이 땅 속 만은 아니다.

미라에서 좀 더 남쪽 바닷가로 내려가면 마을 전체가 아예 바다 속에 잠겨버린 곳도 있다. 케코바(Kekova)라는 곳이다. 2세기 경 지진으로 수몰됐다고 하는데 해안가에는 목욕탕과 집터, 나지막한 돌산에는 당시의 건축물과 석관묘의 흔적이 남아있고 수심 5-6m의 코발트빛 바다 아래로 수중 도시의 부분을 희미하게 볼 수 있다.
 
 
 
 
 
 
게코바에서 좀 더 서쪽으로 가면 물라(Mugla) 주의 달얀(Dalyan)이 나온다. 달얀강에서 보트를 타고 20여분 가다보면 고대 카우노스 왕들의 무덤이 있다. 뎀레의 그것과는 달리 신전식(Temple Tomb)으로 지어진 무덤이다. 이오니아스 식 원주들이 무덤을 그리스 신전처럼 보이게 한다. 터키를 소개하는 영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달얀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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