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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의 Turkey Story] 1. People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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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5-07-08 17:15 조회8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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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터키를 다녀와서 터키를 꿈꾼다. 잠을 자면서 꿔야 할 꿈을, 깨어나서 꾸는 식이다.
주말이면 동네 도서관에 가서 터키 관련 책을 빌리고, 시내에 약속이 있으면 대형 서점에 들러 검색대 앞 컴퓨터에 ‘터키’라고 친다. 좋은 책을 읽고 후감(後感)을 기록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본 후 원작 소설을 찾아 본 적은 있었으나 여행의 ‘뒷북’을 이렇게 둥둥둥 치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대개의 경우라면, 먼지 낀 배낭을 원래의 자리에 놓는 순간 여행지로 향했던 열정과 흥미와 호기심도 함께 내려놓았었다. 그러니 이상한 일이다.
 
감정은 이유가 있으니 생기는 것이다. 좋은 이유가 있으니 좋은 감정이, 불쾌한 이유가 있으니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다. 여행은 연기(緣起)의 법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체험이다. 그 말은 터키의 어떤 이유가 나의 뒷북을 자극했다는 말이다.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친절했거나, 풍경이 억 소리 나게 좋았거나, 음식이 기가 막혔거나, 공기와 바람과 햇볕이 노곤한 고양이처럼 사람을 한 없이 흐느적거리게 했거나,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었거나, 그 모든 이유 중 하나 또는 전체.
 
터키의 지중해 남서부 쪽, 안탈리아와 으스파르타, 데니즐리와 파묵칼레, 보르도를 여행했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터키의 또 다른 곳을 여행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 그것은 아마도 위에 열거한 이유들이 치우침 없이 골고루 내 오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갑게도, 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낯선 공간과의 내 연애 감정을 맹렬히 깨우기까지 했으니 예감은 거의 확신이 되어버렸다. 터키가 준 이 이상함이 고마울 뿐이다.
 
 
 
1. People 사람들
 
1만 2000킬로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은 감동적인 기행문 <나는 걷는다>의 출발점은 터키다.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여정이다. 터키, 즉 아나톨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제 1권에는 <터키식 환대>라는 꼭지가 있다. 이런 내용이다.
 
‘도회르멘차하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작가에게 자신의 방을 숙소로 내준 사람은 찻집에서 만난 후세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옆 방 소파에서 잤던 집 주인은 외출을 한 상태고 올리비에는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메모와 지폐를 놓고 집을 나온다. 그러나 오후에 그는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으며 후세인이 모욕감까지 느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여행자를 자기 집에서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이슬람 교도의 의무라는 사실을 올리비에는 몰랐던 것이다. 말을 전달한 사람은 말한다. “ 터키식 환대라는 것은 주인이 손님과 잠자리,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나누며 손님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손님에게가 아닌 알라 왕국에서 받는 것이니 후세인은 당신이 터키인의 환대 전통을 위반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나는 현지인의 집에서 잠을 잔 적도 없고 터키식 환대를 체험한 적도 없다. 오히려 여행 첫 며칠 동안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노동력의 모습이었다. 오렌지 쥬스를 파는 총각, 쇼핑 거리의 가게 주인과 점원, 기념품을 파는 사람 등이 대부분 얼굴에 수염을 산적처럼 기르고 팔에 털이 시커멓게 났으며 덩치가 산만한 남자들이었는데, 저 정도의 비주얼이라면 ‘공사현장’이나 ‘체험 삶의 현장’이 어울릴 법했다.  그런 그들이 믹서기를 사뿐히 갈아 오렌지 쥬스를 짠하고 내놓는다거나 1리라 짜리 열쇠고리를 방글거리며 판다거나 하릴없이 벽에 기댄 체 이웃집 남자와 수다를 떨고 있으니 그 모습이 내게는 영 낯설 수밖에. 그것은 아마도 아직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지 못하거나, 3차 산업 중심으로 산업이 발달했거나 하는 이유일 텐데 어쨌든 나는 씨름선수 같은 남자들이 지키고 있는 쇼핑거리가 재미있으면서도 잘 적응되지 않았다.
 
 
 
 
터키 사람에 대하여 내가 “와우!” 하고 탄성을 지른 것은 여행 사진을 정리하면서였다. 수 천 장이 넘는 사진 중에 인물 사진이 꽤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밝고 맑고 천진하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사람들은 마치 모델처럼 포즈를 취해줬으며 손을 흔들어줬고 이를 드러내고 웃어주었다. 초상권의 대가로 1달러를 요구하거나 왜 함부로 사진을 찍냐고 외면 또는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닌 마치 여행자가 사진을 찍고자 하면 기꺼이 생업을 멈추고 웃어주라는 것이 터키의 전통 환대법인양 그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기행문의 글귀 중 현지인에 대해 ‘천사의 미소’ ‘순수’ ‘ 때 묻지 않음’ 과 같은 류(類)의 수사에 대해 권태를 넘어 혐오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여행자 방식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환상은 여행자의 몫이겠으나 그 유희를 위해 대상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단하는 것은 경박한 오만함이라는 생각을 그 천편일률적인 기행의 문장에서 느끼고는 한다. 그러나 지중해에서 만난 터키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경계감이 없었고 무한히 열려있었으며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댓가없이 친절했다.사진은 그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한국 사랑은 또 얼마나 지극한가. 20년 전 이스탄불을 여행할 때 , 그랜드 바자르에서 수없이 들었던 ‘브라더’라는 말이 단순한 호객의  단어가 아니었음을,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터키 사람들에게 과분한 짝사랑을 받고 있었음을 이번 여행에서 절절히 확인했다. 차붐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해봐야 알고 신동파가 얼마나 위대한 농구선수인지는 마닐라를 여행해봐야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전쟁에 1만 5천 명을 파병하고 750명이 전사했으며 3200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칸타르데시)라 부르는 그들의 정서는 터키 땅에 발을 딛어야만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데니즐리(Denizli)의 불단(Buldan)에서 만난 요사르(82)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1956년, 6차 파병 때 참전한 분이다. 당시 한국으로 가는 배가 너무 흔들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체 토하기만 했다고 어제 일처럼 회상하는 할아버지는 행여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형제 나라에 대해 서운한 것이 없냐는 질문에, 한국이 잘 되기를 바랄 뿐이며 전혀 서운한 것이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아크야카(AKYAKA)의 바닷가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곱게 나이를 드신 백발의 할머니가 한국인들이냐며 손녀와 함께 다가와 우리들의 손을 잡고 한참을 목메어 했던 것도 당신의 돌아가신 남편이 스스로를 콜레리(한국인)라 부르는 코레가지(한국군 참전  용사) 였기 때문이다.
 
 
아크야카에서 만난 한국 참전 용사의 미망인 (왼쪽)과
한국 참전 용사 불단의 요사르 할아버지 (오른쪽)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Jean Grenier)가 “ 낯선 도시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 꿈을 가지고 있다 했는데 그는 그 공간을 게크겔렌 군도로 이야기했지만 내가 같은 꿈을 꾼다면 나는 의도(意圖)가 거세(去勢)된 사람들이 사는 터키의 지중해라고 말할 것이다. 이방인에게는 무한히 호의적이나 받음에의 계산과 실리의 전제가 애초부터 없었거나, 완벽하게 감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물론 나는 어쩔 수 없는 내 여행자의 오만을 보태 전자라고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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