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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가 혼자 극장에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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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5-02-11 11:19 조회1,3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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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in LIife]

내 남자가 혼자 극장에 가는 이유

2015. 02. 11.수요일
노매드관광청장

뚜벅이 윤용인
 

 지난 여름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이른바 흥행 대박을 쳤다. 다양성 영화, 혹은 마니아층 영화라는 분류가 무색할 지경이다. <원스>를 만든 존 커니 감독의 명성과 좋은 배우, 감성 충만한 OST가 돌풍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흥미로운 것은, 40이상 중년 남성의 예매율이 유독 높았다는 관객 분석 기사다. 게다가 혼자 영화를 보러 오는 아저씨들이었다고 한다. 남자 혼자 영화를 보러간다? 도덕과 법률에 위배되는 사항은 분명 아니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어색한 풍경이다.  그들은 사회적 외톨이거나 궁상맞거나 커플석의 배열을 교란하는 이방인으로 불편한 눈총을 받아야한다. 그런데, <비긴 어게인>에는 홀로 아저씨족들이 그렇게 많았단다. 도대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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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을 유추해보기 전에, 분명히 할 것은 이것이 비단 <비긴 어게인>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혼자 극장을 가는 중년 남성들이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끊이지 않고 있어왔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회사 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마감에 임박해서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나는 혼자 회사 옆 정동극장이나 시네큐브 등으로 탈출하고는 했는데, 남들 다 일하는 평일 대낮의 극장은 고작 열댓 명의 관객이 전부였지만 그중에 삼분의 일은 내 또래의 홀로 아저씨들이었다. 갑자기 막히는 평일 도로를 보며, 사람들이 대체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를 의아해 하는 것처럼 극장 안의 남자들은 상대를 향해, 저 남자는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를 궁금해 했지만 서로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 예의를 지키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동창회에서 했더니, 보험이나 제약회사 영업 쪽 친구들은 낮 시간에 시간이 붕뜨면 혼자 극장을 간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겠다. 직장남성에게 업무 중 땡땡이 장소의 왕좌는 단연 사우나다. 그러나 이곳을 다녀오면 왠지 남들이 알고 있을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아무리 머리를 감지 않고 비치된 스킨로션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사우나 열기에 양쪽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었을 것만 같은 ‘도둑 제 발 저림’ 현상이 있다. 그런데 만화방이나 극장은 이런 불안감 없이 비교적 완전범죄가 가능한 공간이다. 특히 극장은 일거양득이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몰입해 보면 되고, 재미없으면 한 숨 잘 자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혼자 극장을 간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다른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홀로 보는 영화가 집중도가 높다는 사람도 있었고, 동행한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간다는 남자도 있었다. 그 신경이라는 것은, ‘ 이 영화를 애인이나 아내가 재미없어 하면 어쩌나?’ 하는 자기만의 무의식적 생각이었다. 좋은 말로는 배려고, 가벼운 말로는 오지랖이겠지만 어쨌거나 특히 세심한 친구들은 대개 이 고백에 동감했다. 그러나 더 많은 남자들의 호응은, 혼자 엉엉 울고 싶을 때 극장을 간다는 친구의 고백으로 향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자기가 활동하는 인터넷 모임에서, 회원 중 한 명이 황정민 주연의 <남자를 사랑할 때>라는 영화를 혼자 봤는데 눈이 팅팅 붓도록 울었다는 후기를 썼다고 한다. 친구는 그 후기에, 무슨 남자가 극장을 혼자 가서 울고 있냐며 조롱의 댓글을 남겼는데, 며칠 후 자기 혼자 극장에 앉아 그 영화를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도 꺽꺽 소리 내며 울었다고 고백했는데, 영화는 뻔 한 신파였지만 왜 그게 그리 슬펐는지 모르겠다며, 그런데 울다 보니 울음이 울음을 자극해 더 눈물이 나더라며, 그게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고, 가만 보니 주변에도 자기처럼 혼자 온 남성들이 그렇게 꺽꺽 울고 있더라며 그날의 광경을 이야기했다. 그 말에 탄력을 받아, 동창 들은 남자 혼자 보기 좋은 영화를 즉석에서 추천했는데 < 시간 여행자의 아내> < 번지 점프를 하다> < 굿바이 마이프랜드> <봄날은 간다>등 비교적 감성적인 영화들이 등장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비긴 어게인>에 왜 이토록 많은 아저씨들이 혼자 극장을 갔는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엉엉 울고 싶다는 남성의 욕망에는, 애인 또는 아내에게 내 울음을 들키는 것이 창피하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발산하고 싶다는 자유와 해방감에의 열망도 담겨있다. 나는 이것을 <다락방 증후군>이라 부른다. 어느 날은 혼자 다락방에 올라 만화도 실컷 보고, 프라모델 조립도 하고, 세계 정복도 꿈꾸고 싶은 독립 공간에 대한 남자의 로망. 극장에 불이 꺼졌을 때, 남자에게 극장은 다락방이 된다. 이곳에서 모든 존재와 책임과 허식의 무게감은 잠시 내려놓는다. <비긴 어게인>이 시작되고, 누군가는 유부남과 나이 어린 아가씨가 하나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함께 들으며 산책하는 모습을 보며 설렘을 즐겼을 수도 있다. 실패한 뮤지션의 재기를 보며 좌절된 자신의 꿈을 위로 받았을 수도 있다. 영화를 통해 받는 각각의 대리 만족은 모두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그들 모두는 다락방에서 솔직했고 자기 감정에 거침없이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혼자 울건, 혼자 웃건, 혼자 자건, 혼자 설레건, 그 모든 감정의 배설을 내 동행자의 눈치 없이 (설령 그 동행인이 이 남자의 모든 감정을 다 받아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마음껏 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날 , 당신들이 극장에서 홀로 출몰한 중년 남성을 발견했다면 따뜻한 시선으로 그저 모른체 해주시라. 또는 당신 남편의 양복에서 극장표 한 장이 나왔다면, 대체 누구와 같이 간 것인지를 추궁하거나 혼자 갔다는 이야기에 마치 자위한 남편을 바라보듯 어이없어 하지 말고, 이 남자가 자기 마음 속 친정에 다녀왔거니 생각해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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