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톱배너
미디어_뉴스

[힐링 in Life] 아! 꿈의 해석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9-03 15:36 조회1,870회 댓글0건

본문



꿈.

누구나 꿈을 꾼다. 장래에 뭐가 되고 싶다, 뭐 그런 꿈 말고 자다가 꾸는 그 꿈 말이다.

돼지꿈을 꿔서 로또를 사기도 하고 치마 폭으로 용 한마리가 날아왔다며 좋은 태몽이라고 좋아라한다. 반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 가위 눌리는 꿈 등 흉몽의 다음날은 몸도 찌뿌둥, 마음도 우중충하다. 이래저래 우리는 작던 크던 꿈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꿈은 주요한 관심의 영역이다. 심리학자 융은 꿈을 인간분석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했다. '투사' '무의식의 반영' 등이 꿈을 설명할 때 함께 따라오는 용어들이다.

심리 공부를 한다니까, 가끔 지인들이 자신이 최근 이런 꿈을 꾸었는데 무슨 의미냐고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는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몰라!" 라고 잘라버린다. 꿈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았으니 실제로 모를 뿐더러, 개인적으로 나는 꿈에 대해 큰 흥미가 없다.

그것은 내가 꾸는 꿈은 대부분 개꿈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돼서도, 꿈 속에 마징가제트가 등장하고 미사일에 꽁꽁묶여 이라크 땅에 떨어지고 맘에 들어하는 연예인이 스트립 댄스를 하는 꿈들에 대하여 융의 이론을 대입하는 것이 웃겨도 너~무 웃긴 짬뽕이다.


이런 꿈 꾸면 일석이조 대박. 아우 야해

그런데 한달 전쯤 너무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로보트도 안나왔고 전쟁도 안났으며 여자도 안나왔다. 게다가 보통 개꿈은 자고 일어나는 즉시 수증기처럼 쉬시식 내용물들이 기억 속에서 증발해가는데 이 꿈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게다가 그 내용이 너무 우울하고 무거워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같았다.

도반이자 노매드 힐러 분중에 꿈상담 전문가가 있어서 그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꿈 내용을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줄>
지난 월욜 새벽에 꾼 꿈이죠.
연속해서 두어개의 꿈을 꾼듯하고 흉몽이었어요. 아들인지 딸인지 죽었던듯해요.
그리고 이 꿈을 꾸었죠.

이사를 갔어요. 마치 중세의 성처럼 넓고 아름다운 집이었죠. 정원에 꽃과 나무가 만발했고 혼자 집구경을 했어요. 기분은 좋지 않았어요. 아마 바로 전 꿈 때문인듯해요.

집은 나선형이고 붉은 담벽이었는데 집이 너무 넓어 자꾸 새로운 것이 나오니 놀란 마음이었어요. 그때 목줄을 본거에요. 어느 방인지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 정원이었는지 암튼 제 눈에 보인거죠.
하얀색 굵은 동아줄이었어요. 두 개였고 담쟁이 덩쿨과 장미꽃등 사이에 걸려있었죠. 하나는 완전한 원형. 하나는 끊어진 원형. 둘다 나무에 걸려있었어요.

그것을 본 순간 이 아름다운 집에 너무 어울리지않고 집조차 흉물스러운 생각이 들어 눈길을 돌려 외면했어요. 그런데 내 의식과는 달리 내 눈은 다시 그 줄을 흘끔거리고 있었고 줄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고있었죠. 백조나 하얀 드레스같은 느낌이었죠.

저는 태어나서 처음 본 목줄이었으니 그 순간에, 아 이게 목매달아 죽는 목줄이구나, 그리고 이렇게 아름답다면 나도 한번 목을 매달고싶다...이런 생각을 뭐에 홀린듯하고 있었죠. 몸은 아주 편안했어요
그리고 잠에서 까어났어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도 마음에 먹구름이 낀다. 제길슨이다.

두 주 정도의 시간이 흘러 답이 왔다. 논문 마무리 등으로 바빠 꿈을 투사할 에너지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으며 보내 준 꿈이 너무 심오해서 곱씹고 곱씹고 수십번 곱씹어도 마음이 아프고 아리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꿈은 개인의 성장과 자기 실현을 위해 온다며 그러기에 꿈이 주는 중요한 메세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그녀가 보내준 첨부 파일을 열었다.

아... 이 꿈이 참으로 선명하면서도 참으로 묘하네요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내면의 심오한 성장과 변화가 일어날 때 찾아옵니다. 그것이 특별히 아들인지 딸인지 자식의 죽음으로 왔다면, 자식은 내가 함께 살아낼 나의 미래이자 비젼입니다

이 꿈을 내가 꾸었다면 나는 이 꿈을 꿀 당시 무의식의 깊은 속에서 어떤 변화나 방향전환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 나의 꿈이자 꿈속의 아들 또는 딸의 나이즈음(만약 꿈속 아들나이가 10살이라면 10년전) 준비하기 시작한 어떤 가치관이나 일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그와 동시에 죽음의 꿈은 항상 깊은 우울을 동반합니다. 의식이 그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식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내가 이 변화를 위해 포기한 나의 미래가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으로 대변되는 어떤 결단, 변화가 있지만, 이것은 또 한편으로 다른 어떤 것의 포기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포기의 댓가로 얻게 되는 그 이후 꿈의 전개, 즉 죽음과 너무나 대비되는 아름답고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공간에서도 기쁨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 연속해서 두어개의 꿈을 꾼듯하고 흉몽이었어요. 아들인지 딸인지 죽었던듯해요. 그리고 이 꿈을 꾸었죠. 이사를 갔어요. 마치 중세의 성처럼 넓고 아름다운 집이었죠. 정원에 꽃과 나무가 만발했고 혼자 집구경을 했어요. 기분은 좋지 않았어요. 아마 바로 전 꿈 때문인듯해요."

대략 이런 모양이었던..

꿈속에서 집은 항상 자기 자신을 상징합니다.

내 안은 이처럼 넓고 아름다운 공간과 정원과 꽃과 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뭔가 모를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 공간에 누구도 없습니다. 다 가진듯 하나...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이나 그래서 너무나 쓸쓸하고 죽음을 연상케하는 공간.
나는 다 가진 듯하나 참으로 외로운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혼자인 사람, 철저하게 고독한 사람

" 집은 나선형이고 붉은 담벽이었는데 집이 너무 넓어 자꾸 새로운 것이 나오니 놀란 마음이었어요. 그때 목줄을 본거에요. 어느 방인지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 정원이었는지 암튼 제 눈에 보인거죠."

특히 꿈속의 나선형은 인류 최초의 가장 오래된 무의식의 상징이며, 우리의 내면작업은 나선형으로 이루어집니다. 상승과 하강을 반영하는 나는 이 나선형의 깊은 자기와 만남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듯 합니다. 우리 본래의 마음자리는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며, 그래서 아름다우며, 그래서 허무하며, 그래서 결국 그것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나의 심오한 변화, 내면의 성장은 바로 이것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 인듯 합니다. 그러기에 자꾸 넓은 공간에서 새로운 것이 나옵니다

그 공간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목줄입니다.

" 하얀색 굵은 동아줄이었어요. 두개였고 담쟁이 덩쿨과 장미꽃등 사이에 걸려있었죠. 하나는 완전한 원형. 하나는 끊어진 원형. 둘다 나무에 걸려있었어요. 그런데 내 의식과는 달리 내 눈은 다시 그 줄을 흘끔거리고 있었고 줄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고있었죠. 백조나 하얀 드레스같은 느낌이었죠. "


이보다 100배는 예뻤던..

우리말에 목줄을 놓는다. 목 놓아 운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깊은 슬픔을 동반합니다. 목은 머리와 몸을 잇는 통로입니다. 이성과 감성을 잇고 자신을 표현하고 소리를 내고...
내가 목놓아 울지 못한, 목놓아 토해내지 못한 슬픔이 무엇일까요? 깊은 곳의 처절한 외로움의 마주하지 못한 처절한 슬픔일까요 ?

두 개의 동아줄. 하나는 원형, 하나는 끊어진 줄.
이미 끊어진 줄은 아마도 꿈의 첫장면 자식의 줄일 것입니다. 나는 나머지 하나 원형의 줄앞에 이제 설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모든 죽음중 자살은 가장 심오한 성장과 변화입니다. 그러나 그 도구가 총이나 칼이 아니고 왜 목줄일까요...?

목에 줄을 대고 자살을 한다는 것은 공기와의 접촉, 숨을 차단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숨을 안쉰다는 것, 공기와 접촉을 막는다는 것은 바로 신성에 대한 거부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심오한 변화의 지점에 와있지만,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나의 주체적 결단을 하되, 그것은 영성과 반하는 것일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힘 있는 결단이며 무의식의 자발적 희생이자 결행입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희생을 선택하는데 매혹되는 사람입니다.

또 한 측면으로 두 개의 줄,하나는 원형, 하나는 끊어진...
참으로 묘한 대조 입니다

나는 아는 듯합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라는 것...이 둘의 대극이 하나이며, 이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마치 타로카드 21번의 월드카드의 라운드 원형처럼, 그 원형이 끊어질때 0번의 바보는 다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측면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는 두 개의 줄..
꿈에서 나무 또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원형입니다.나는 이렇게 연결과 끊어짐, 내면의 어떤 두 개의 선택 사이에 놓여 있지 않은가요? 아니면 이미 하나의 선택(심리적 죽음)을 하였고 또 하나의 선택(심리적 자살)이 남아있나요?

이 꿈을 투사하면서 계속...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흉함, 다 갖춰짐과 아무것도 없이 텅빈, 연결됨과 끊어짐 등 참으로 대극적인 지점들이 자꾸 연상되어 집니다.

내 삶에 만나지지 않는 대극들이 많았다면 아마도 이 꿈을 꾼 이후에 이제 그런 대극들이 충돌이 아닌, 그 역설을, 그들은 하나임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소명을 사는 사람은 선택의 폭이 넓은 것 같지만 가장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극이자 역설이지요.

내 안의 깊은 셀프와의 만남(나선형의 집, 원형의 밧줄), 이것은 죽음에 다가가는 두렵고 우울한 경험일 것입니다. 그러나...이것은 굉장히 원형적인 선물의 꿈이며 깊은 삶의 이치를 깨닫는 자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한 듯 합니다.

융 학자인 로버트존슨은 항상 사람들에게 얘기한다고 합니다

" 꿈에서 자살이 나오면 실제로 죽어라!! 그러나 네 몸은 다치지 마라!!!"
원형의 밧줄에 목을 멘다면, 내가 죽이고 싶은, 내가 떠나보내고 싶은,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그 원형의 밧줄을 기억하며 내 삶에 만나지 못했던 이분법을 통합해내며 동그랗게 만달라를 그려보기를 바랍니다. 또한 앞서서 투사했던 죽음으로 대변되는 어떤 결단, 변화가 있지만, 또 한편으로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투사가 난해한가요?

이꿈이 주는 에너지가 그러하네요

심오한, 난해한, 모호한 그러나 선명한, 뭔지 알것 같은, 지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처절한 아름다움, 살아내야하는 숙명....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이 꿈의 마지막 장면은 제 뇌리를 멤도네요... 아 쉽지 않은 꿈이에요.묘한 에너지가 감돈다는. 그래서 가슴이 지극히 먹먹해진다는...

처음 해석글을 읽었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두번째 읽었을 때 해석자의 기묘한 말투에서 신비로움을 느꼈으며, 지금 세번째 읽으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다양한 감정이 올라온다.

지금 살아가는 내 상황 (변화, 선택, 갈등 등)과 이 꿈의 해석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해석자에게 그 어떤 답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보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꿈해석이, 화투점이나 사주점처럼 딱 맞는 무언가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닐테고, 설령 그것이 딱 맞았다고해도 그것에 호들갑을 떨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신기하네, 라며 술자리 안주로 한두번 쓰이다 말 것이다.

그보다 나는 꿈해석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위로를 받았으며 생각할 꺼리를 찾게되었다. 다소는 막연했던 그 무엇이 정리가 되는 듯도 하다. 꿈은 개인의 성장과 자기 실현을 위해 오는 것이므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말도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글을 통해 <꿈 상담과 타로 cafe.daum.net/dagamlee> 의 이다감 선생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솔직히 말한다면, 한두번의 술자리 안주값을 벌게해준 것에 대해서도.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