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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안 나이트 시즌 2]요리 못하는 여자, 행복했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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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25 17:17 조회2,138회 댓글1건

본문

1.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러니까 나는 걸끄러운 스캔들하나 없이 남편하나 밖에 모르고 산, 지극히 도덕적인 대한민국 보통아줌마다. 아줌마가 되기 전에는 나도 예쁜 걸 좋아한 아가씨였지만 결혼한 후 아가씨 모드는 사치일 뿐이라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다. 그러니까 결국 내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차원에서 여자로서의 매력같은 것은 살펴볼 엄두를 못냈으며, 사십이 넘어서부터는 아예 걸리적거리고 성가시기까지 한 여성성을 지워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탓인지 거칠고 무례하며 부끄러움 따위는 간 곳 없는데다 무서운 것도 없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이런 게 강인한 여자로 살아가는 모습일까?

현모양처라는 말 속에는 섹시하고(늘 몸을 가꾸고), 개성있고(성깔도 포함되고), 로맨틱한(앞뒤 분간 못하는) 매력이 결코 포함되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젊은 여자들에게 이 말은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 늘 조용히 웃고, 제 것을 양보하고 써도 달아도 제 의견을 크게 말하지 않으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남편의 입장에서는 시댁도 포함된다) 어떠한 고통이나 불이익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참고 견디는 여자... 이런 모습이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런 현모양처가 재미없어 남자들은 ‘매력적인’ 여자에게 한눈을 팔기도 한다. 물론 “낮에는 현부, 밤에는 요부”라며 야누스적인 여자를 원하는 욕심쟁이 남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영화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의 한장면

어쨌거나 분명한 건 남자든 여자든 결혼생활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는 자기 아내와 남편이 객관적으로야 어떻든 제 눈에 현숙+섹시한 여자로, 짐승돌+지성파 남자로 보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행복한 결혼생활의 조건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이다.

“동화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대”

이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

행복하게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여성성을 포기하면서 살았던 나를 내 남편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주변에 여전히 공주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녀는 잘못된 선택일까?

2.

나보다 대여섯살 어린 진옥이는 나와 친한 친구의 손 아래 올케다.

친구의 남동생이 직장이 대전이라 따로 살고 있을 때 우리가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알게 되었다. 친구는 올케를 매우 못마땅해 했다. 내가 봐도 여러모로 시댁의 기준에 못미치는, 아니 심하게 말해 빵점일 정도로 음식솜씨가 제로에 가깝고 어른들에게 흉잡힐 일이 많았다.

친구는 올케를 잘못 만나 남동생이 가장으로서의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있다며 “저러다 신세도 망칠 것”이라며 혀를 찼다. 시댁 누님의 친구지만 이상하게도 진옥이는 나를 어려워하지 않아 우리는 참 막역하게 가까워졌다. 어쩌면 시댁의 눈이 아닌 보통여자의 눈으로 진옥이를 보게 되어서 진옥이가 나를 따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서 보게 된 진옥이는 시댁의 눈으로 본다면 형편없는 여자였다. 음식솜씨가 젬병이어서 누님이 오는 날이면 매운탕이나 감자탕 해장국 따위를 냄비에 사다 놓거나, 아침에는 전날 사온 샌드위치를 식탁에 내 놓았다.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고 딸 하나를 키우며 시댁어른 수발은 커녕 김치하나를 담그지 못하는 진옥이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친구와 진옥이는 당연히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집안에 가장 큰 누이인 내 친구는 틈만 나면 남동생을 타박했다. 제 계집하나 버릇을 못 고치다니 못나도 보통 못난 게 아니라며 종주먹을 들이댔고 그럴 때 마다 남동생은 두 손을 싹싹 빌며 누이의 아량이 넓어지기를 애원했다.

진옥이는 척,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주과에 속하는 여자였다.

“난 못해, 무서워서. 난 못해, 힘들어서. 난 못해, 징그러워서.”

몸도 약한 편이라 단출한 가사노동도 몹시 힘겨워 했다.

퇴근한 남편이 도와주어야 청소기도 돌리고 이불빨래도 하는 것 같았다. 요리를 못하는 진옥이는 온갖 음식을 완제품으로 구입해 먹었다. 그 대신 정보나 동작이 빨라 어디서 누가 김치를 잘 담그고 어디 된장이 더 맛있고 밑반찬을 누가 잘 만드나 살펴 두었다가 애교와 인심과 애원으로 그것들을 얻어다 놓곤 했다.

시집의 평판만 형편없는 게 아니라 친정 형제 사이에도 그 애 별명은 얌체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여자. 그 애는 언제나 곱고 예쁘며 나긋나긋하고 연약했다. 진옥이 말에 따르면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것이 자신의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충전기 배터리 용량이 남보다 적어보였다. 남편 퇴근 후에 함께 청소하고 저녁을 해먹고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려면 낮의 충전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앙리 마티스의 '대화‘

그 애의 충전이란 하루 종일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으며 곱게 가꾸고 있는 일. 맞벌이를 하거나 시부모를 모시거나 농사를 따로 짓는 보통의 여자들은 한마디로 손가락질을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대충 아무렇게나 있다가 외출할 일이 있어야 머리도 손질하고 얼굴이라도 매만진다. 그 애는 남편에게 보이려고 화장하고 손질하고 집안을 꾸몄다. 그 일에 방해되는 어떤 일도 완강히 거부했던 것이다.

음식을 잘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사먹고 쾌적하고 멋진 곳만 골라 다녔다. 진옥의 큰 시누이인 내 친구의 불평에 그 애 남편은 두말없이 빌기만 한다는 것이다.

“누님 그 애는 그런 거 절대로 할 줄 몰라요. 시키지 마셔요. 그냥 내버려 두셔요 우리끼리는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구요”

주변의 불평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애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과 열심히 재미있게 살았다. 그렇게 끝까지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청천 벽력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그 애 남편이 급성 암으로 불과 육 개월 만에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암 병동에서 마지막 몇 달을 버티고 있을 때 병문안을 간적이 있었다. 마침 환자는 아직 의식이 있었고 누님인 내 친구도 아내인 진옥이도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진옥이가 집에서 해 왔다는 호박죽을 떠먹이고 있었는데 환자는 어렵게 삼키는 중이었다. 내 친구인 누님이 그릇에 담긴 호박죽을 한번 떠 먹어보더니 별안간 인상을 쓰며 큰소리를 쳤다.

“아니 이걸 호박죽이라고 쑤어왔니? 안 그래도 입이 쓴 환자에게 이걸 호박죽이라고 집에서 갖고 온 거야?”

영문 모르고 어리둥절한 내 옆에서 진옥이는 울상을 했다.

“사 먹이지 않으려고 만들었어요. 몸에 좋으라구 사골국물에 고기다져서 넣고 호박도 많이 넣었는데요”

그때 진옥이 남편이 손짓을 했다.

“누나. 너무 맛있어. 이 사람이 나한테 맞게 만든 거라 간간하니 아주 좋아. 여보 여기 더 많이 줘”

병원 휴게실에서 친구가 말했다.

“호박죽에 고기 넣은 거, 비위는 상해도 참아주겠다만 소태같이 짜니 그런 것을 먹고 평생 살아 몹쓸 병이 걸렸는지도 모른다구. 그런데 너도 들었지? 그게 더 맛있다구 하는 천치가 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화가 나서 눈물을 짜는 친구를 두고 병실에 두고 온 장갑을 찾으러 황급히 되돌아갔다. 문이 조금 열린 병실에서 진옥이는 남편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여보. 평생 음식도 못해서 당신 맛 있는거 한 번도 못해주고 나를 용서해줘. 여보. 미안해 당신 복이 없어서 나 같은 여자 만나서......흑흑...”

나는 들어가기가 멋쩍어 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있었다.

“아니야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한 번도 그게 섭섭하지 않았어. 예쁜 당신, 착하고 귀여운 내 아내.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나. 지금도 당신이 있어 슬프지도 않고 기쁘기만 해.“

그날 병실에 두고 온 장갑을 끝내 되찾지 못하고 왔다. 남편이 죽고 난 후 남편만 바라보고 산 진옥이가 남은 인생을 이성적으로 살아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진옥이는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었다. 시댁이나 친정은 물론 가까운 사람에게 조금도 자신의 힘을 보태지 않아 눈총을 받았지만 에너지를 오로지 남편과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데만 썼던 까닭인지 딸은 아주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로 성장했다.

부모가 늘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만 보아온 딸은 역시 제 남편을 곰살궂게 잘 조종 할 줄 안다. 제 어미와 다르게 건강하니 능력까지 갖추어 복많은 젊은이의 아내가 되었다. 진옥이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여한이 없기에 그가 없는 세상도 긍정적으로 꾸려나가고 있는게 아닐까?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했기에 가슴에 맺힌 한이 없다는 게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쩌면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을 하며 성내고 툴툴대느니 제가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상대를 상처내지 않는 것. 어쩌면 진옥이는 훨씬 현명하지 않았을까? 남동생을 잃고 몇 년을 올케 원망이나 하면서 두문불출하던 친구가 얼마 전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요즈음 곰곰 생각해 보니까 말야 그녀석이 행복 했던 거 같애. 제 아내가 그리 예쁘고 귀여운 마음으로 살았으니 진옥이 그 애가 행복하게 해 준 거 아닐까 싶어. 내가 죽을라구 그러는지 평생 눈치도 못 챘던 일을 이제 알게 되네. 죽기 전에 진옥이 부탁을 그리 많이 했건만 미워서 들여다보지도 않았어. 살았을 때 마음 좀 편하게 해줄걸. 나는 못난 놈이어서 제 계집 역성만 드는 줄 알았지 뭐니. “

3.

행복이란 감성적이거나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정신의 어떤 순간이다. 따라서 행복이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도 행복의 조건을 알기 위한 것일 뿐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느끼기보다 그것에 대해 해석하거나 이야기 하는 데에 더 큰 흥미를 보인다. 해석이나 설명, 분석 따위는 하면 할수록 행복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대상이 아닐까. 어떤 남자가 행복했다고 한다면 그를 행복하게 한 요소가 무엇인가를 눈여겨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여자가 진옥이처럼 살수는 없다. 정신의 가치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는 어떠한가? 행복한가? 지금 행복한가? 우리 부부는 어떤가? 내 남편의 은밀한 속마음은 어떨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기만 해봐라. 오늘 저녁은 국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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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푸른비님의 댓글

푸른비 작성일

기사의 진옥님이 저의 와이프와 비슷하군요.
음식은 거의 못하는데, 반찬은 참 잘 얻어옮니다.
굳이 없는 거 찾지 말고 좋은 점은 그냥 좋게 봐주는 것, 그게 사랑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