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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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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13 16:06 조회1,8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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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5

- 1998 년 6 월 9 일

2003. 10. 22. 수요일
딴지관광청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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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며칠인지 달력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한국을 떠난 지 벌써 4 일이 되었다. 중국 땅을 밟자마자 생긴 어지러움과 복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간다. 빨간 차, 빨간 글씨, 빨간 옷, 빨간 간판, 빨간 것 투성이의 중국... 멀미가 날 것 같다.

오늘 처음으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미리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이제서야 전화를 했다. 잘 왔다고 너무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고... 웃는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얼굴은 어느 새 얼굴은 눈물로 축축해져 있었다.

빨개진 눈으로 손을 흔들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어색한 웃음으로 날 바라보던 아빠의 모습이 떠 오른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고인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국의 거리가 낯설고 입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은 하루 종일 내 속을 괴롭힌다. 무표정한 사람과 그 보다 더 건조한 거리들이 바스락거리다 못해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무엇을 먼저 해야될지 모르겠다. 중국 말 한 마디 모르고 너무 대책없이 떠나온 것은 아닌가 후회가 들기도 한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잘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런 생각이 들다니... 한심해 죽겠다.

책을 펴면 까맣고 작은 한문들이 책 사이를 스물스물 기어다니고 TV 속에선 시끄러운 하이톤의 중국 말이 브라운관 바깥으로 튀어나와 내 시야를 흐린다. 무슨 말이 저렇게 빠르고 희한스러운지... 어제는 TV 에서 '사랑을 뭐길래' 를 해 주던데 중국 말을 하는 대발이와 앙앙 거리는 지은이의 대화는 듣고만 있어도 짜증이 치민다.

은영이, 은주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나보지 못한 친구들도 모두 보고싶다. 바쁜 척 하지 말고 미리 시간 좀 내서 보고 올껄...

알록달록한 중국 돈은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 종이 같아 아직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우리나라 돈 천 원이 여기에선 십 원 정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그랬는데 십 원, 백 원.. 하는 단위도 우습다. 시장에 갔더니 일 원이면 오이를 수십 개를 살 수 있고 양파도 고추도 꽤 많이 살 수 있다. 일 원이면 우리 돈 백 원밖에 안하는 돈인데...

그런데 나는 아직 물건 사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 시장은 그렇다쳐도 물건 값이 찍혀있는 슈퍼에 가서는 말 한 마디 할 필요도 없는데 그 넘의 거스름 돈 때문에 헤매기가 일쑤여서 항상 넉넉하게 큰 돈을 내 버린다. 덕분에 내 지갑은 잔돈으로 터질 지경이다.

학교에 갈려면 아직 3 개월이나 남았는데 막막하다. 생각 같아선 짐 싸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그건 너무 쪽팔리겠다. -.-;

아~ 집 밖을 나가도 마땅히 갈 데가 없고, 먹고 싶은 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한국에서 생각할 땐 중국 땅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 불행 끝, 행복 시작일 것만 같았는데 지금 내 앞에는 불행이란 넘만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언제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 커다란 아가리를 내밀고...

중국 사람들 틈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이곳 저곳 이국적인 풍경에 흠뻑 취해 있을 것 같은 상상은 신호등도 없는 도로에서 차와 사람에 치이고 가끔은 눈을 찌를 듯한 손가락질로 산산히 부서졌다.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우회전 해야할 곳을 놓쳐 버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이대로 계속 몰려 가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아 자전거를 돌렸는데 그만 뒤에 오는 자전거와 부딪히고 말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날 노려보는 사람한테 내가 건넨 말은 '씨에씨에(謝謝 xiexie 고마워)'.

'뚜이부치(對不起 duibuqi 미안해)' 라고 해야 되는데 왜 그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이 튀어나온 건지... 금방 다시 뚜이부치라고 말 했는데고 인상을 쓰며 다짜고짜 소리치길래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멀뚱히 쳐다보다가 튀어 버렸다. 속 좁은 중국여자 같으니라고...

내가 너무 꿈만 꾸고 있었나보다. 현실이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여행온 게 아니니까 어서 이 낯선 사람들과 풍경들에 적응해야 한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거다. 이거라도 못 탔으면 여기서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먼 곳까지 나가지 못하지만 이 녀석만 있으면 난 적어도 하루의 반이상은 심심해하지 않아도 된다.

에이~ 모르겠다. 아직은 4 일밖에 안 지났다. 낯선 곳에 왔으니 당혹스러운 것도 정상일꺼다. 이만하면 난 아직은 괜찮은 거다. 울고 싶으면 울어 버릴 테다. 여기서 누가 본다고... 아득바득 참을 이유도 없다.

빨리 말 배워서 슈퍼 말고 시장에도 가고 싶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중국 친구도 만들고, 식당가서 요리도 시켜 먹고, 여행도 가고 싶다. 무엇보다 조금만 건드려도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손가락질 하는 중국 사람들한테 한 마디 따끔하게 뭐라고 해주고 싶다. 당분간은 드럽지만 피하는 수밖에...

내일은 학교를 둘러봐야겠다. 가게 아저씨한테는 '니하오' 라고 인사도 해봐야겠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배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내게 뾰족하게 손가락을 내밀며 왜 인사하냐고 화낼 일은 없겠지...

1998 년 6 월 9 일.


중국에서 처음으로 쓴 일기를 찾아냈다. 온통 빨갛던 중국, 그 속에서 멀미나는 머리를 부여잡던 기억들이 떠올라 멍해지기도,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그때는 누구한테도 티를 내진 않았지만 혼자서 눈물 짓는 날도 많았고 뒤척이던 밤도 많았다. 새벽녘에 잠이 깨면 가족들 사진 꺼내고 친구들 사진 찾아 꺼내놓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닭살스러운 얘기를 하기도 했다. 막상 전화 통화를 하면 보고싶다는 말 한 마디 못하면서 왜 그런 청승을 떨었는지...

한 번은 진짜 진지하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한 적도 있다. 거대한 대륙의 기에 눌려버린 건지 집만 벗어나면 울렁거리는 속과 어지러운 머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이대로 이곳에 있다간 언젠가는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읽기 전에는 내가 중국에 왔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일기 속의 나는 답답해하고 힘들어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랬었다. 아무 것도 몰랐고 어떤 걸 알아야 했는지조차 몰랐던 내게는... 하루하루가 곤욕이고 지옥이었다.

환상에만 흠뻑 젖어살다가 막상 현실을 대하고 보니 일종의 혼란이 왔었던 것 같다. 숨만 쉬고 있어도 온몸이 깨끗해질 것 같은 경치 좋은 유럽의 어느 나라도 아니고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동남아의 어떤 나라도 아닌 중국에서의 환상이 얼마나 화려할까만은 그래도 내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던 그림이 있었다.

그 그림안에는 첨밀밀의 장만옥과 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 쌓고 있는 수 많은 자전거 행렬속에서는 사람 사는 풋풋한 냄새가 떠 다니고 그 어딘가에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내 모습도 있었다. 아비정전의 장국영은 맘보를 추고 난 천안문 광장 앞을 뛰어다니고, 생각이 통하는 중국 친구와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묻어 있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전거 타는 장만옥과 여명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자전거 행렬속에서는 사람 사는 매캐한 냄새와 퀭한 공기 그리고 가끔 높은 언성의 정신없는 중국말이 오고 갔고 그 속 어딘가에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내가 있었다.

맘보를 추고 있어야 할 장국영은커녕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 만나질 못했고 '뚜이부치'와 '씨에씨에' 도 헷갈리는 나는 북경에 있는 천안문 광장을 찾아 갈 수도 없었다. 중국 친구는 언감생심이었다. 한국 친구라도 빨리 만나서 한국 말로 인사라도 하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땐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날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흐지부지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내 자전거 바퀴가 닿는 곳이 넓어질수록 내 머리 속에선 한국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건 자취를 감춰 버렸다. 보고싶은 얼굴들도 흐릿해져 버렸다.

처음 보는 거리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같은 것들에 정신이 팔려 집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고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는 그들의 말이 어찌나 신기한지 하루종일 쫑알 거리고 다녔더랬다.

붉은 색이 눈에 익으면서부터는 울렁거림도 사라졌고 어지럽지도 않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우회전을 못하는 일도 없었고 손가락질하며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한텐 '팅부동(ting bu dong 못알아듣겠어)' 이라며 슬슬 약을 올리기도 했다.

시장에 가면 두어 시간은 기본이었다. 이것저것 들어서 만져도 보고 가격도 물어보고 맘에 드는 게 있으면 흥정도 했다. 사실 흥정이라기보다는 땡깡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고집을 피는 한국 여자애가 미워보이진 않았는지 가게 주인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내주었다. 그러다가 참견하기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그들과 떠듬떠듬 얘기를 하기도 하고 잠시동안이지만 우리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힘들어 못 견딜 것만 같았던 시간들도 어떻게 정신없이 지내고 나면 또 그렇게 지나 버리는 거다. 이미 한참 지나 온 나는 아직도 이전의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며 웃을 수 있는 거다. 이젠 추억이 되어 버린... 그날의 기억을 떠 올리며...

어쨌거나 1998 년 6 월 9 일의 나는 2003 년 10 월 22 일의 나보다는 훨씬 더 씩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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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말;

1998 년 6 월 10 일. 동그란 얼굴과 동그란 배를 가지고 있는 가게 아저씨는 나의 인사에 '니하오' 하며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처음으로 말을 건넨 중국 사람 1 호가 된 아저씨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 오기 전까지 한번도 내 인사를 거른 일도, 내게 뾰족하게 손가락질을 한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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