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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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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13 16:06 조회1,9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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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4

- 바다를 찾아서

2003. 10. 01 수요일
딴지관광청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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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나의 생활 반경은 일정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맨날 가는 길이 그 길이고, 만나는 사람이 그 사람이고, 먹는 것이 그 것이니 타국의 이색적인 느낌은 커녕 가끔은 내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는 문이 없는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이 아무렇지 않음을 넘어서서 문이 달린 화장실이 외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시장에서는 물론이고 백화점에서도 물건 값 깍는 것에 능숙해지고, 노릿한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다녀야했던 거리의 꼬치 굽는 냄새에 식욕이 발동하기도 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중국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나...' 싶다가도 지루한 하품이 만들어내는 눈물의 볼록렌즈를 통해 거리를 보고 있을 때면 '아! 그래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중국까지 와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보낼 순 없었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따분한 일상에 화끈하게 태클을 걸어줄 뭔가 새로운 꺼리가 필요했다. 아~ 한국에서라면 가까운 한강에라도 나가 바람을 쐬던가 밤 기차를 타고 내려가 바다를 보며 기분 전환을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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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 바로 그거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에 왔을 때 닿았던 항구인 탕구에서의 바다를 제외하곤 난 이 곳에서 강이나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 바다를 찾아가자! 난 순식간에 바다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오면 지금의 이 지루한 일상에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넘의 바다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가야하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바깥을 어슬렁 거리다가 아파트 앞 구멍가게 주인인 중국아저씨한테 다가가 물어봤다.

레인 : 아저씨. 바다가 어디있어요? 여기서 젤 가까운 바다요.

아저씨 : 몰라. 한 번도 본 적 없어!

고향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가게 아저씨는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학교 앞 자전거수리하는 아저씨는 아마도 이틀 정도는 이동을 해야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친구들도 몰랐고 지도를 펴 놓고 봐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다를 떠 올린 순간부터 귀에서는 파도 소리가 맴돌고 눈에서는 푸른 바다빛이 아른거렸다. 아~ 바다... 바다... 난 순식간에 바다 병에 걸려 버린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오자바이(자전거에 모터가 달렸다고 해야하나, 오토바이에 페달이 달려있다고 해야하나? 암튼 우린 그걸 오자바이라고 불렀다) 뒤에 낚시대를 메고 지나가는 아는 동생 녀석을 만났다. 낚시대로 야채나 돼지고기를 낚진 않을 테고 분명히 저 넘은 물이 있는 곳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녀석을 잡아 세웠다.

레인 : 야야! 일루와바. 너 어디 가?

동생 : 고기 잡으러 가.

레인 : 어디루?

동생 : 따강.

레인 : 어디? 따강? 거기가 어디야? 멀어?

동생 : 오자바이타고 2 시간 좀 넘게 걸릴껄...?

레인 : 나도 데리고 가.

동생 : 안대. 자전거는 너무 느려서...

레인 : 빨리 달리면 되자너. 나 잘 타. 응응?

동생 : 아~~ 다음에. 나 간다...

나쁜 넘... 얄미운 넘... 몹쓸 넘... 그렇지만 바다를 아는 그 넘은 시끄러운 오자바이 소음만 남겨둔 채 낚시대를 팔랑이며 따강으로 떠났다.

따강. 이랬다. 그 넘이 말하는 바다의 이름은... 지도를 펴고 이름도 촐싹맞은 따강의 위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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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파란 색이 많은 걸 보니 틀림없이 그 근처에는 멋진 바다가 있을 것 같았다. 따강... 넌 제대로 걸렸다. 으하하하...

일단 처음 가는 곳이고 길도 모르니 같이 갈 사람들을 물색했다. 중국 운전면허증과 차가 있는 오빠에게 가 보지도 않은 따강을 무지 훌륭하게 설명해서 운전 기사를 확보해두고 따강의 지리를 알고 있는 몹쓸 넘을 협박해서 가이드를 확보했다. 아는 언니 한 명과 친구 한 명, 그리고 나까지 총 다섯 명으로써 바다를 찾아나서는 '따강 원정대' 가 결성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정대의 첫모임이 열렸다. 그런데 언제 가야하나에서 시작한 얘기는 한국비됴가게에서 대여한 허준 테이프를 돌려 보자는 얘기로 마무리되고 어떻게 가야하나로 시작한 얘기는 이번 연수생들 미모의 수준이 어떠한지로 끝났다. 이대로 난잡한 회의(?)가 계속 되다간 따강은 커녕 어디 작은 호숫가 찾아가기도 힘들게 생겼다. 나름대로 원정대장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자! 빨랑 옷 입어!'

겨울 밤이라 바람이 무지 차가웠지만 본인의 카리쑤마(땡깡)에 눌린 원정대원들은 신속하게 옷을 껴입고 다마스스럽게 생긴 하얀 중국 차에 몸을 실었다. 천진외곽쪽으로는 처음 가보는 것이라 여권과 거류증을 챙기고 약간의 돈과 후레쉬 등등을 준비했다.

차는 눈에 익숙한 도시를 빠져나가 생소한 거리를 달리고 바다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설레임은 몸 밖을 빠져나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차 안에는 LeAnn Rimes 의 Blue 가 계속 해서 반복됐다(테잎이 그것밖에 없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이거슬 살포시 누질러보자).

몹쓸 넘이 제대로 길 안내를 하고 있는지, 오빠가 운전을 잘 하고 있는지, 둘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고 있는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내겐 떠나는 자체가 흥분이었고 새로운 곳에서의 헤맴도 기쁨이었다.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블루는 어느 새 뽕짝으로 변해 우리들의 목을 타고 내리고 또다른 블루(鸞帶; 란따이-맥주이름)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우리의 목을 적셔주고 있었다. 우린 추위도 잊은 채 창문을 열어제끼고 신나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 눈에 포착된 표지판 하나. 大港(dagang, 따강)

나는 작은 차가 흔들거릴 만큼 고래고래 소리를 지렀다. 표지판이 향하는 쪽으로 차를 돌리니 바로 앞에 방파제가 보였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방파제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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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였다. 바다... 달빛이 반짝거리는 진짜 바다. 매서운 겨울 바람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바다가 지금 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벅차올라 터질 것 같았다.

우리는 방파제에 올라 일렬로 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술 기운이 넉넉하게 올라서 그랬는지 추운줄도 모르고 신발과 양말도 벗어던졌다. 소리를 지르며 방파제 끝까지 힘껏 달리고 백사장으로 뛰어내렸다. 잠바도 벗어제끼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쳤다.

다른 사람들도 맨발로 백사장을 뛰어다녔다. 몹쓸 넘의 유리 조각에 발 바닥이 찍혀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다 각자 나름대로 충분히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바다도 그런 우리를 아무말 없이 지켜봐주었다.

바닷물 속에 손을 담가보고 세수도 하고 입안도 헹궈보았다. 짭쪼름한 바다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기분이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두어시간쯤 그렇게 뛰어다녔다보다. 우린 모두 백사장에 누워 달을 감상했다. 보름달이 되려면 조금 더 여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밝게 빛나는 커다란 달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술 기운이 떨어지자 서서히 한기가 몰려왔다. 꽁꽁 언 발을 비벼가며 다시 방파제를 향해 달려갔다. 벗어놓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방파제에 일렬로 나란히 앉았다.

차 안에서는 끊임없이 블루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우린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유롭게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까맣고 짙던 밤하늘이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일출도 봤다. 그리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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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의 색깔도 봤다. 온갖 건더기가 둥둥 떠 있는... 완전 똥색깔의 물. 우리가 앉아있는 방파제 밑은 완전히 쓰레기더미였다. 우린 할 말을 잃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백사장을 향해 뛰어갔다. 역시나... 역시나....

쓰레기장이 따로 없었다. 물은 어찌나 더러운지 온갖 부유물로 물 때깔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우린 어제, 아니 몇 시간 전에 저 물에 미쳐 맨발로 뛰어들고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하고 입안을 헹궜다. 그때 느꼈던 기분 좋은 짭조름이 이젠 찝찝함으로 바뀌어 연신 침을 뱉어내게 했다.

몹쓸 넘의 발 하나만 유리조각에 찔린 게 기적일 정도로 백사장엔 깨진 유리병이며 프라스틱 조각, 각종 캔이 즐비했다. 우리가 누워서 달을 보던 장소였다. 아무 것도 몰랐을 때엔 그렇게 환상적이던 백사장이, 개운하던 물 맛이, 아름답던 바다가 태양 아래 노출되고 나니 똥물도 그런 똥물이 없는 게다. 힘이 쭉 빠졌다.

우린 완전히 뒷통수 맞았다고 투덜대며 차에 올라탔다. 몹쓸 넘은 자기가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였다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운전하는 오빠는 시끄럽다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날이 완전히 밝아오기 전에 우린 집에 도착했다.

그 일 이후로 나의 바다 타령은 쏙 들어갔다. 따강은 나에겐 바다가 아니였고 난 중국에서 아니 천진에서 바다를 보겠다는 생각을 접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블루의 노래만 들으면 그 드러운 똥물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따강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레임이 떠 오른다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의 방파제가 떠 오르는게 아니라 달빛이 부서지던 그 환상적인 바다와 방파제 바로 밑을 넘실거리던 파도, 그리고 찝찝한 냄새 대신 짭쪼름한 바다냄새가 풍겨오는 거다. 온갖 더러운 쓰레기들과 탁한 물빛은 내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떠 올랐다.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해골물과 샘물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 또 무엇을 구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배운 단 말인가.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唐)에 있으며, 당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하게 바다를 원하던 내 마음의 눈과 내 몸의 눈은 같은 장소에서 다른 느낌을 가진 것이다. 원효대사의 깨달음과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나도 무언가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그래도... 따강은 바다가 아니다.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에 있고 당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 없겠냐만 천진(天津, Tianjin)엔 바다가 없고 바다는 천진에 없다. 적어도 내겐 그게 진리다.

아~ 나는 마음의 눈보다 마음 밖의 눈이 더 중하니 큰 사람이 되긴 글러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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