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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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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13 16:06 조회1,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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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3

- 눈물의 오징어볶음

2003. 09. 25 목요일
딴지관광청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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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 아니, 만드는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내가 만드는 요리가 제법 그럴싸한 맛을 낸다는 거다. 난 나의 음식을 먹어 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시장을 보고, '한 그릇 더!' 라고 말 할 사람들을 떠 올리며 밥을 짓고, '정말 맛있었어.' 라고 부른 배를 기분 좋게 두드릴 사람들을 상상하며 요리하니까...

그러니까... 내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거다.

중국에서 난 꽤 자주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초대했다. 타국 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거겠지만 한국과는 다른 야채와 양념들로 우리 입에 맞는 맛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특히 혼자 먹는 밥. 이게 정말 고역이라 멸치볶음, 김치찌개 하나를 하더래도 이사람 저사람 불러모아 함께 먹는 게 습관처럼 된 거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혼자서 밥을 먹고 있노라면 맛은 커녕 지금 내가 밥을 먹는 건지, 죽지 않을려고 무의식적으로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넣는 건지... 밥을 먹는 게 일종의 살아가기 위한 행위 정도 밖에는 의미를 갖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처량해질 때가 많은데 여럿이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면 맛도 맛이지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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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꽤 많은 한국 양념들과 이곳 저곳에서 구한 야채, 그리고 조선족 식당에서 공수한 각종 먹거리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순대라던가 떡볶이 떡이라던가 깻잎, 어묵 같은 것들...

순대는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 아바이순대라는 식당에서 살 수 있었는데 조리하지 않은 순대는 팔 수 없다는 주인 아저씨를 꽤 귀찮게 군 덕에 어렵게 구할 수 있었고 떡볶이 떡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방앗간에서, 깻잎은 한국을 갔다오는 사람들이 사다주거나 가끔 한인 교회에서 파는 것을 샀다. 지금은 지천에 널린 게 한국 슈퍼들이고 그렇게 구하기 어렵던 깻잎이며 어묵이며 떡볶이며...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당시엔 구하기 쉽지 않은 정말 귀한 것(?)들이었다.

난 가끔씩 그 귀한 재료들을 풀어내어 잔치를 벌였다. 냉동실에서 또아리를 튼 채 꽁꽁 얼어 있는 순대를 조금 풀어내어 쫄면과 깻잎, 양배추와 양파, 마늘을 충분히 넣은 후 갖은 양념을 하고 얼큰하게 볶아내어 훌륭한 순대 볶음을 만들었고 빨갛고 매콤한 양념과 오뎅, 라면사리를 넣어 떡볶이를 만들었다. 돈이 좀 넉넉한 날엔 해물시장에 들러 낙지도 사고, 조개도 사고, 새우, 꽃게도 사서 해물탕을 끓이기도 했다.

그런 다음 친구들을 불러내어 함께 먹는 거다. 그러면 난 금새 그들의 천사가 되고, 엄마가 되고, 베스트 프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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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난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들러 가방을 내려 놓고 시장갈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하지만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고 편한 신발과 가방을 하나 준비하는 거다. 질퍽한 시장 바닥을 헤집고 다닐려면 슬리퍼보다는 운동화가 편하고, 세상에서 제일 얇은 비닐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중국의 부실한 비닐 봉지는 가끔씩 날 중국 시장에 쪼그리고 앉게 만드는 데다가 떨어진 물건 위로 사람들이나 자전거 바퀴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도 해서 튼튼한 가방을 챙겨야 했다.

오랜만에 해산물 시장을 가기로 하고 집 앞에서 인력거를 잡아 탔다(시장이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는 건 시장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꽃 시장 때문이다. 장을 다 본 후에 꽃 시장에 들러 꽃을 한아름 사 들고 인력거를 타면 인력거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꽃 향기가 살짝 묻어나서 나를 기분좋게 간지럽혀주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해산물 시장에 갈 땐 꼭 인력거를 탔다).

물론 타기 전에는 흥정을 잊지 않는다. 난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나만의 규칙으로 정하고 있었다. 시장이 있는 거리를 말하고 일단 3 원에 가자고 한다. 5 원을 넘지 않는 한도내에서 흥정을 하고 그 이상을 부르면 난 깨끗이 돌아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력거 아저씨들은 내가 다른 인력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커이커이(可以 keyi, 알았어.그래)' 하며 인력거 머리를 돌린다.

난 그 날도 어김없이 운동화를 신고 가방을 메고 3 원 짜리 인력거를 타고 시장엘 갔다. 먼저 한 바퀴를 쭉 둘러봤다. 이건 엄마한테 배운 건데 일단 시장을 다 둘러본 후에 어디에 뭐가 물이 좋고 싼지 파악해뒀다가 나중에 사야 절약도 하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댔다.

오징어가 싱싱했다. 거무틱틱한 껍데기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이 아주 건강해 보였다. 소쿠리에 다정하게 올라있는 다섯 마리를 다 사 버렸다. 한 번 해 먹기엔 많은 양이지만 모자라서 아쉬운 것보다는 남는 게 낫다. 이래서 난 항상 손이 크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지만 이런 음식 사치(?)는 중국이 아니면 감히 어디서 해보겠냐는 생각에 난 항상 음식을 넉넉하게 했다. 그리고 많은 것 같아 보여도 막상 먹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고 어쩌다 음식이 남아도 서로 싸 가겠다고 해서 마음의 짐도 덜어주니 음식의 양으로 야뱍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오늘의 메뉴는 오징어볶음으로 정하고 야채를 사러 돌아다녔다. 한국의 것보다 적어도 5 배는 클 것 같은 중국의 고추를 1 근 사고, 구불구불 미로같은 단면이 드러난 양배추 하나와 양파와 당근 파, 마늘 등등의 갖은 야채를 샀다. 그리고 늘 그렇듯 시장 끝에 연결된 꽃 시장에 들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스티블루와 카라를 한 단씩 사 들고 인력거에 앉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먼저 야채를 씻어 다듬었다. 양배추와 당근은 채 썰고 고추와 파는 어슷 썰어 놓는다. 마늘도 다진다. 오징어를 다듬기 위해 동그란 나무 도마를 꺼내고 네모난 중국식 칼을 부엌 벽 타일에 갈았다. 한국에 있을 땐 물컹한 느낌이 너무 싫어서 날 오징어는 손도 못 댔는데 이젠 혼자서 배로 가르고 내장도 손질한다(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은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데다가 익숙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주황색 비닐 봉투에 담긴 오징어를 하얀색 싱크대에 쏟아 놓으니 세모난 머리 다섯 개와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오징어 다리들이 제 멋대로 엉켜있다. 한 마리를 잡고 미끈거리는 배를 갈랐다. 그 다음 빨판이 징그럽게 달려 있는 다리를 잡고 한번에 내장까지 전부떼어낸다. 몸통은 얇은 뼈까지 깨끗히 제거하고 다리는 속에 감춰진 눈과 내장을 다 잘라내고 다듬는다. 그렇게 두어 마리쯤 손질을 했나보다. 오징어가 워낙 미끄러워서 조심한다고 했는데, 칼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왼쪽 검지 손가락을 조금 잘라놨다. 손톱과 그 안쪽에 붙어 있는 살이 조금 떨어져 나가고 그다지 빨갛지 않은 속살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피가 뚝뚝 흘렀다. 아픈 것보다는 도마위를 흥건히 적셔놓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의 흐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순서대로라면 이쯤에서 난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러면 엄마나 친구들이 달려와서 휴지로 피를 닦아 주고, 약을 발라줘야 한다. 그들의 걱정스런 말투에 나는 더욱 더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오징어 볶음은 엄마가 마무리를 해야하는 거다.

그런데, 난 혼자였다. 손도 못대던 징그러운 오징어를 씩씩하게 다듬다가 손이 베었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호소할 엄마도, 친구도.. 아무도 없었다.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데 난 부엌에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하얗던 오징어가 빨갛게 물이 들도록...

갑자기 혼자라는 느낌이 무섭게 엄습했다. 그리고 이내 서글퍼졌다. 반창고를 갖고 달려와 줄 엄마 생각이 나는 듯 하다가 사라지고, 괜찮냐고 달려와서 피를 닦아줄 친구들 생각이 나는 듯 하다가 사라지고,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인 나만 덩그러니 부엌에 남아 있었다.

오징어를 손질 하다가 손을 베인 작은 사건은 어이없게도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또렷하고 선명하게 각인시켜주었다. 네모나고 무식하고 무거운 중국 칼은 내 검지 손가락의 손톱과 살 뿐만 아니라 내 가슴 속의 그리움마저 도려냈다.

결국엔 울었다. 부엌 바닥에 주저 앉아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어가며 펑펑 울어댔다. 아파서 운 게 아니였다. 혼자인 사실이 너무나도 서러워서... 그리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어렸을 땐 피가 나면 조금이라도 더 나오게 일부러 짜내서 엄마한테 달려갔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어..' 라며 보여줬다. 그러면 엄마는 '어머 우리 딸, 피가 왜 이렇게 많이 났어?' 하는 표정으로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는데 난 그런 엄마의 얼굴이 좋았다. 상처를 살피느라 이마 가운데 살짝 찌푸려진 주름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고 호오~ 하며 약을 발라줄 때 오므라진 엄마의 입술은 그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뿌듯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난 다쳐서 약을 바르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사랑받고 보호받는 행복한 아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혼자다. 이렇게 피가 많이 흘렀는데... 엄마의 동정심을 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고 날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횐데 말이다.

꽤 많은 양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양파를 잘랐던 칼에 베어서 그런지 손이 점점 화끈거려왔다. 난 얼른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풀고 다친 부위를 물로 씻어내고 약을 발랐다. 반창고를 붙여도 계속 새어나는 피 때문에 다시 붕대를 칭칭 감고 왼쪽 손에 고무 장갑을 꼈다. 칼 반대편에 붙어있는 내 조그마한 살점을 떼어내고 다시 오징어를 손질했다. 손이 아려왔지만 그보다 내 요리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 얼굴이 더 아른거렸다.

피로 빨갛게 물들은 오징어를 버릴까 하다 물로 씻어보니 깨끗해지길래 그냥 넣고(사람의 피가 배인 거라 더 맛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손질해 둔 야채와 갖은 양념으로 매콤하게 오징어볶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레인 : 야야!! 오늘은 오징어볶음이야. 열라 맛있으니까 얼릉 와..
니가 다른 얘들한테 전화 하구...

친구 : 응.. 와아~~~~! 콜라 사 가꾸 갈께.

십 분도 안되서 친구들이 몰려왔다. 큰 접시에 오징어볶음을 한 가득 담아내고 커다란 공기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식탁에 올려놨다. 늘 그렇지만 별다른 반찬은 없다. 우린 항상 일품요리였다.

나까지 총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오징어 다섯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여전히 '맛있네, 맛있어.' 를 연발해 주는 친구들 덕에 난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맛있게 먹은 것 같다.

그런데, 한 친구가 상을 치우다가 붕대를 감고 있는 내 검지손가락을 발견했다.

친구 : 야~ 너 손 왜 그래? 다쳤어?

레인 : 아하하. 응. 이 바보들..

친구 : 왜? 왜 그랬어?

레인 : 오징어볶음 맛있었어?

친구 : 왜 다쳤냐구 물으니까.. 그건 왜 물어? 왜 그랬냐니까?!

레인 : 맛있었냐구!!! 대답이나 햇!

친구 : 응. 맛있었어. 왜?

레인 : 푸하하하.. 너네 그게 왜 맛있는 줄 알어?
내 피에 물들은 오징어를 넣어서 그래. 아하하하.. 웃기다.

친구 : 너 손 다쳤구나?

레인 : 응... 오징어 손질하다가 베었어.

친구 : 어디바바.. 많이 다쳤어? 아직도 피가 베어나오네...

레인 : 아이씨~ 괜찮어.

친구 : 어디 풀러바.

레인 : 괜찮대두. 아.. 그만해. 우리 후식이나 먹자. 콜라 가져 와!

친구 : 많이 다친 거면 병원 가자. 응?

레인 : 너네 자꾸 왜 그래..? 흐흑....

결국 또 한 번 울었다. 사실은 너무나 아팠다고... 그런데 아무도 없어서 그게 더 맘 아팠다고... 상을 치우다 만채 바닥에 주저 앉아 붕대에 칭칭 감긴 검지 손가락을 펴 들고 울어 버렸다. 오징어볶음을 맛있게 먹은 친구들은 이 어이없는 눈물 앞에서 잠시 당황해하는 듯 하더니 금새 같이 눈물을 떨구었다. 모두들 오징어만큼 만한 아니, 잘려진 손톱만큼 만한 그리움을 참아내고 있었나보다.

그날 저녁 우린 오징어볶음 먹고 터져 버린 매운 눈물 주머니 덕분에 보고 싶은 엄마, 아빠 얘기에서 맨날 싸우던 언니, 오빠, 동생 얘기, 한국에 두고 온 여자친구, 남자친구, 중국 올 때 헤어진 애인, 집에 있는 강아지 얘기와 한국의 그리운 것들에 대한 얘기로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에서 붕대를 다 풀어낼 때까지 친구들은 나 대신 밥도 해 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가끔은 세수까지 시켜줬다.

우린 그 일을 '오징어눈물대사건' 이라 칭하고 가끔 웃었다. 사실은 그때 배가 너무 불러서 눈물이 난 거라고... 네가 울길래 따라 운 것 뿐이라고... 오징어볶음이 너무 매워서 눈이 빨개진 거였다고...

배불리 오징어볶음을 먹고 난 네 명의 여자애들이 하나의 검지손가락 때문에 바닥에 퍼질러 앉아 통곡한 일은 사실 슬프다기보단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검지 손톱 끝자락에 조그맣게 흉터를 남기고 자라지 않는 손톱을 볼 때마다 그날의 허전함이 떠 오른다.

그래서 난 오징어를 보면 가끔 외로워진다. 그리고 아주 가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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