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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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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13 16:05 조회1,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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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2

2003. 08. 14 목요일
딴지관광청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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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날 '때년' 이라고 불렀다. 중국 사람들은 안 씻고 더러우니까 '때놈' 이고 난 그런 중국 땅에 살고 있는 년이니 당연히 '때년' 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친구들이 말한 '때' 는 우리 몸에서 나오는 지우개스런 그것이지만 사실 때놈의 때(혹은 떼)는...

큰 나라 사람이라는 '대놈(大者)'이 때놈으로 변했다, 대국(大國)으로 불리던 중국 사람들을 비하해 부르던 때국놈이 때놈으로 변했다, 떼거지로 몰려다녀서 '떼놈' 이다, 여진족의 순수 우리말이 '되' 이기 때문에 그쪽 사람들을 통털어 '되놈'으로 부르던 것이 때놈이 됐다 등등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때년이라 부르면 때놈은 '큰나라 사람' 을 뜻하는 거라 우겼지만 사실, 직접 살면서 중국을 겪어보니 저 각종 썰들 중에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안 씻고 더러워서 때놈이라는 말이었다. 중국의 문화와 이러저러한 환경들이 그들을 때놈으로.. 그리고 나를 때년으로 만든 거다.

일단, 잘 씻고 깨끗하려면 물이 좋아야 하는데, 중국은 우선 물이 꽝이다. 수돗물에 다량의 석회가루가 섞여 있어 씻어도 개운한 맛이 없고, 심할 땐 물을 받아 놓는 대야 밑 바닥에 허옇게 석회가루가 가라 앉기도 한다.

6 층 아파트의 맨 윗층에 살 때는 약수 마냥 쫄쫄 거리는 물과 걸핏하면 예고도 없이 물이 끊기는 바람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 나중에는 석회가 섞이든 말든 수돗물이 좀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난 것마냥 기쁘기까지 했드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조차도 하루에 두 번 할 샤워 한 번으로 줄이고, 한 번 할꺼 내일로 미루고 그 물 받아서 빨래하고 청소하는데... 평생 거기서 살아 온 중국 사람들은 오죽하겠냔 말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였다. 진짜 중국 본토의 때년(?)을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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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옌' 은 나의 첫 푸다오(輔導 fudao 과외) 선생님이였다. 학기가 시작하는 9 월이 되려면 3 개월이나 남아있던 터라 주위 아는 분의 소개로 푸다오 선생님 구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주옌이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에 푸다오 선생님을 구하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된다는 조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해야 되고 사교적이고 목소리가 커야 되고 성실하고 친절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발음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된다는 거다. 대개 첫 푸다오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 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 잘못 굳어진 발음은 교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날 하얀색 손수건을 손에 쥐고 그 보다 더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스런 주옌을 보자마자 전혀 여성스럽지 못한 나는 말 한 마디 해보지 않고 그녀를 나의 선생님으로 삼아 버렸다.

주옌은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고 키도 작았지만 다무진 입매와 작은 눈이 전형적인 중국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훨씬 더 성숙해 보였다. 그러나 가끔 내가 장난을 칠 때면 금새 붉어지는 볼과 그 볼에 수줍게 패이는 보조개 때문에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한 시간에 7 원으로 얘기가 된 푸다오비에 과감히 1 원을 더 써서 두 시간에 15 원으로 하기로 했다. 1 원 이래봤자 백 오십원도 안되고 15 원 이래봤자 이천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두 시간 공부하면서 생색을 내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을 전할 길이 그것 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주옌도 흔쾌히 응했고, 날 제자로 받아주었다.

다음 날부터 '한어회화 301 구' 를 시작으로 주옌과의 첫 수업이 시작됐다. 전에도 한국 학생을 가르쳐 본 경험 있던 주옌은 꽤 능숙하게 내 입에서 중국어를 이끌어내 주었고 진도도 쑥쑥 잘 나갔다. 무엇보다 똑 떨어지는 그녀의 발음은 '숑숑' 거리는 불란서의 여인네 보다 훨씬 더 멋들어졌고 목소리는 또 얼마나 가늘고 이쁜지 눈을 감고 들으면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에게 계속 푸다오를 받아야 하는가의 여부를 놓고 고민했던 건 그녀의 입냄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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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 1 로 공부하는 푸다오의 특성상 마주 보거나 옆에 앉아 공부를 해야했는데, 그녀의 이쁜 목소리 뒤에 풍겨오는 엽기적인 입냄새는 머지 않아 내 중국어 실력을 저하시키는 데 한 몫을 단단히 해내고 말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그간 정든 주옌에게 '네 입냄새 때문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고 얘기 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렇게 길고 어려운 문장을 말 할 실력도 안 되는 데다가 무엇보다 난 그렇게 딱 떨어지는 인간이 못되었기 때문에...

어찌 됐건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처음엔 음료수를 준비했다. 주옌이 좋아하는 우롱차에서 아이스티, 커피, 쥬스 기타 등등의 마실 것을 매 시간마다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적응이 안되서 그런지, 음료수가 맛이 없어서 그런지 한두 번 입에 댔다가 말 뿐 시원스레 컵을 비워내질 않았다.

다음엔 과자와 사탕, 초코렛 같은 것들을 놓아 보았다. 먹으라고 권했지만 계속 말을 하면서 나를 가르쳐야 할 주옌에게 이런 군것질거리는 당최 말도 안되는 간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은 치약이었다. 이것만이 그녀의 입 냄새를 직빵으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방법이 떠 오르질 않았다. 그냥 줬다간 이빨 좀 닦고 다니란 뜻으로 받아들일까봐(사실 그거지만.. 그럼 주옌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진 못하겠고.. 더듬더듬 말 하는 처지라 말로 잘 설명할 수도 없고... 그래서 겨우겨우 생각해낸 게.. 종합 선물 셋트였다.

한국에서 가져 온 샴푸, 린스, 바디 샴푸, 그리고 치약과 칫솔이 함께 들어 있는 선물 셋트. 그걸 몽창 다 주는 거다. 중국산 치약 달랑 주는 건 정말 '이빨 좀 닦고 다녀' 가 될 테고, 한국에서 갖고 온 거랍시고 치약 하나 달랑 주기엔 가오가 안 살고... 종합 선물 셋트라면 자연스럽게 줄 수있고, 주옌도 별 감정없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레인 : 주옌. 이거 너 주는 거야.

주옌 : 먼데?

레인 : (한국에서 가져온 종합 선물 셋트야.. 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실상은...)
주옌. 이거 너 주는 거야.
(
를 또 한 번 반복했다. 난 샴푸가 린스가 치약이, 종합 선물 셋트가 중국 말로
뭔지 몰랐다
)

주옌 : 왜?

레인 : (네가 너무 잘 가르쳐 주고 고마우니까 내가 선물하는거야. 자 받어.!
라고 맘 속으로 생각했으나 실상은...
)
어.. 음... 친구, 그니까.. 선생님, 한국, 그리고... 고마워, 너 가져!
(
..등의 무지하게 간단한 단어들을 쭉 늘어놓았다. )

주옌 : 아냐. 난 괜찮어. 너 써.. (라고 알아들었지만 뭐 실상은 아닐 수도 있다.)

온갖 바디 랭귀지를 쓰다가 말다가, 커다란 리본이 달린 선물 모양의 그림을 그렸다가 말다가.. 뭐 여튼 꽤 어렵사리 설명을 했건만 주옌은 끝내 선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난 주옌이 이걸 받지 않으면 아니, 이걸 받아서 안에 있는 치약을 쓰지 않으면 그녀와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푸다오를 끝내고 돌아가는 주옌의 자전거 앞 바구니에 선물을 꽂아두고 잽싸게 도망쳤다.

이제 입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좋은 샴푸 냄새와 향기로운 바디 샴푸 냄새를 풍기며 찾아 올 주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주옌은 향기로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냄새에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런지 그녀의 향기(?)가 전보다 더 심하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고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해 '잘 쓰고 있냐' 고 물어보니... 좋은 물건 같아서 어머니 드렸단다. '아~ 주옌, 우짜믄 조으냐...'

주위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네가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고 하다가도 막상 주옌과 대화를 나누면 그들도 내게 측은한 눈길을 보내왔다. 계속 신경을 써서 그런지 입냄새는 더욱 깊어가는 것만 같았고 난 다른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주옌과의 시간을 정리해야될 듯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옌이 초록색 병을 들고 왔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자꾸 다리를 긁어대는 내게 왜 그러냐고 묻길래 '애앵~~~' 하면서 손톱으로 다리를 콕 찍었더니 그걸 기억해두었다가 모기 약을 가져온 것이다.

다음 날은 중국 사람들이 간식으로 많이 먹는다며 해바라기 씨, 호박 씨 등의 각종 씨앗을 가지고 왔고, 다음 날은 중국어 사전을, 다음 날은 손수건을 가지고 왔다. 나의 선물이 너무 고마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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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입냄새 때문에 주옌과의 시간을 정리하려 했던 내가 너무 창피했다. 마치 엄마 몰래 나쁜 짓 하다가 들킨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얄팍한 생각에 준비한 선물을 진심으로 받아 주고 답례라며 이것저것 싸 들고 온 그녀한테 너무 미안했다.

난 시장에서 향을 사다 피우고 주옌과의 자리를 좀 이동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니 충분히 감수하고 있었다. 주옌은 그녀가 내 뿜는 입 냄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 냄새를 풍기는 선생님이었으므로...

조금씩 중국말이 입에서 떨어질 때쯤.. 지난 일들이 너무 꺼려져서 주옌에게 슬쩍 물어봤다.

레인 : 중국 사람들은 입 냄새도 그렇고 좀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주옌 : 그래? 습관이 안 되서 그런가바.
밥 먹으면 바로 차를 마시니까 닦을 필요가 없어.
게다가 물도 안 좋으니까 씻기도 힘들고... 그나마도 여기는 나은 편이지.
아래 지방은 더 심해. 근데 혹시 나도 그래?

레인 : 아.. 아냐. 안그래. 주옌은 안 그래.

끝까지 사과하지 못했다. 그녀의 입냄새가 중국 사람들 모두에게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한국 친구들에게 얘기를 전한 내 마음의 나쁜 냄새가 그러질 못했다.

어쩌면 주옌은 내게서 한국인 특유의 냄새를 맡았을런지도 모른다. 호들갑스럽게 과외 시간마다 지독하게 풍겨대던 내 입의 치약 냄새가 불쾌했을런지도 모른다.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고 하기엔 작은 사건이지만 주옌은 어느 한 부분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나의 미련함을 일깨워줬다.

밥 먹고 차를 마시는 게 양치질을 대신할 수 있는 중국인(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의 생활 모습과 어느 중국 식당을 가든 따뜻한 차를 쉴새없이 가득 채워 놓는 그들의 식당 문화, 그리고 충분하지 못한 물로 인해서 자주 씻지 못하고 또 그렇게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주옌이나 중국 사람들의 냄새, 그리고 나도 모르게 풍길지 모를 나의 냄새는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인 향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쁘고 좋고를 평가할 수 없는... 아니, 그 냄새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나라 전체를 평가하면 안 되는.

지금은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주옌의 입 냄새보다는 중국 차의 향기와 시장의 싸구려 향 내음, 그리고 주옌의 웃는 얼굴만 떠 오른다.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보다 훨씬 강력한 냄새들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옌에 대한 그리움은 그것을 떠 올릴 만한 기억의 공간을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가끔 친구들은 나를 때년이라고 부른다. 그 때마다 주옌의 얘기를 전하며 때년은 더러운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큰 나라에 사는 마음 넓은 여자아이를 말하는 거' 라고 말해 준다. 물론 몇 초 지나지 않아 늘 같은 말로 내게 메아리 치지만...

'그래, 넌 좋겠다. 때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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