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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1 - 다섯 빛깔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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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13 16:05 조회1,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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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 다섯 빛깔의 중국

2003. 08. 04 월요일
딴지관광청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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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황사 바람만 부는 줄 알았다. 사람들은 잘 씻지 않아 지저분하고, 거리엔 쓰레기들이 발에 치이고, 시장에는 우리 몸에 해롭다는 '중국산 농산물' 이 가득 쌓여 있는 줄 알았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중국에 와서 살아보니 그런 것들로 중국을 얘기하기에 대륙의 땅은 너무 넓었다. 물론 지독한 황사 바람이 불었고, 지저분한 사람도 많았고, 쓰레기도 많았다. 중국시장이니 중국산 농산물이 넘쳐나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좁은 땅에선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느낌의 바람이라든가 40 도를 넘나드는 더위,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늘색 등... 우리나라에선 접할 수 없는 중국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었다. 더럽고 지저분한 게 중국의 일면이라면 가끔은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중국의 이면도 있다.

중국의 아름다움은 경치좋고 자연미 빼어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나, 숨만 쉬고 있어도 몸 속이 깨끗이 정화될 것 같은 동남아 섬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아니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고 감성의 차이니까...

아프리카에 날아다니는 똥파리에도 감정이 실리면 호랑나비보다 이뻐보일 수도 있고, 똥물이 졸졸 흐르는 중국의 하천도 필이 꽂히면 세느강이 부럽지 않은 것처럼 분명 같은 곳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봐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 느낌은 천지 차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나폴리의 아름다운 항이거나, 햇빛이 쏟아지는 몰디브의 해변이거나, 매력적인 물의 도시 베니스라고 해도 느끼지 못하고 감흥을 얻지 못한다면 천국에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국은 내게 그것을 가르쳐줬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눈으로, 피부로, 몸으로 먼저 느껴 버리는 것! 그 느낌을 가지게 하는 모든 일련의 감각(感覺)이 감정(感情)으로 변하고 감격(感激)으로 이르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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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낮잠은 대부분 설치기 마련인데 너무 편안하고 푹 잔 듯한 느낌이었으니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을 잔 것 같다. 기분이 좋았다. 까슬까슬한 커다란 타올이 발 끝에 닿는 느낌도 그랬고 서늘한 가을 바람이 날 간지럽히는 느낌도 그랬다.

잠에서 깨긴 했지만 난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이대로 내일 아침을 맞이할까, 일어나서 다시 책을 읽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눈 속은 눈 밖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며 바삐 움직였다.

따뜻했다. 촉감으로 전해지는 그런 온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포근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꼼짝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몸은 머리 속의 명령에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뜨고 싶다.. 떠야지...를 수 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런데...

방 안이 온통 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열려진 창문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바람은 하얗고 투명한 커튼을 흔들고 창 넘어 붉은 색의 기운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마음을 흔들어댔다.

작은 금빛 가루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하얀색 회벽은 오렌지 빛으로 물 들고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는 책은 붉은 호수 속에 빠져 있었다.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붉게 물 들었다. 금빛 가루들은 방안을 떠돌아 다니며 미쳐 물 들이지 못한 구석까지 색을 입히느라 분주했고 가끔은 내 피부에 닿아 눈처럼 녹아 내렸다. 이대로라면 오렌지빛이 도는 눈과 머리 색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낯선 느낌이었지만 너무 아름답고 편안했다. 마치 (언제가 마지막이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더니 점점 목이 저려오고 싸늘한 가을 바람이 옷 속을 파고 들었지만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였다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것만 같아 잠에서 깬 상태 그대로 눈만 깜빡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렌지빛은 붉은 피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흙빛으로 변해 버렸다. 아쉬움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색이 죽어갔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렌지빛을 내뿜던 회벽도 붉은 물 속에 빠져 있던 책들도 방안의 모든 물건들도...

그러나 꿈 속에서 헤매다 나온 것 같은 그 묘한 기운과 붉은 하늘 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날, 생전 처음 느꼈던 붉은 하늘은 빨간 글씨와 빨간 차, 빨간 깃발이 가득해서 멀미가 날 것 같던 중국을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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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아주 큰 호수가 여러 개 있다. 학교 안에 있는 호수니까 커봐야 얼마나 클까 하겠지만 이게 좀... 많이 크다. 학교 안을 통과하려면 이 커다란 호수를 최소한 3 개는 지나쳐야 하는데 그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내 눈에는 그 호수들이 중국 사람들의 땅 자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기로 약속한 어느 날,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학교로 향했다. 신나게 자전거를 달려 학교 정문을 통과했는데 글쎄 그 불편한 호수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디서 불이 난 줄 알았다. 바로 앞의 사물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시계를 흐려 놓는 이것이 안개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거나 작은 종이 조각이라도 태웠더라면 아마 그렇게 믿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앞이 보이지 않아 자전거를 천천히 몰았다. 나와 내 자전거를 스쳐가는 안개 때문에 기분이 한껏 들떴다. 사람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자전거에서 양 손을 떼어내 위로 들어 올리기도 하고 날개짓을 해 보기도 했다. 꿈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마치 다른 곳에 와 있는 것처럼... 지저분하다는 것 외엔 별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없던 학교가 안개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더러운 호수물도 안개에 가리니 어찌나 분위기가 살아나는지 하마터면 발을 담그고 앉아 있을 뻔 했다.

기분좋게 시야를 어지럽히던 안개는 날이 밝아올수록 서서히 걷혀갔지만, 난 안개가 뿜어내는 마력에 휩싸여 친구들과의 아침 약속은 까맣게 잊은 채 호수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의 등교 시간이 빨라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여전히 불편하고 얄미운 호수는 지가 내킬 때마다 그 환상적인 입김을 뱉어냈지만 말이다.

(중국의 안개는 자연 현상이라기보다는 오염된 대기상태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스모그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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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아주 무섭다. 갑자기 많은 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서도 그렇지만 하수구 시설이 변변치 않아서 그렇다. 비가 잠깐만 내려도 꽉 막혀 버리는 하수구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강을(?) 건너야 할 때도 있고 가끔 주책없이 오바이트를 해대는 녀석 때문에 냄새와 오물들로 정신이 없을 때도 있다.

평소 거리를 돌아다니던 쓰레기들이 하수구가 만들어 낸 강 위로 둥둥 떠 다니고 그 쓰레기들 위로 자전거와 사람이 지나다니니 참 지저분하긴 하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질 않는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병이 걸릴 것 같은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고 걸어가야 하는 것 자체가 영 께름직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처음에는 마냥 신이 났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일부러 물 웅덩이만 골라 물을 튀겨가며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도로에 점점 물이 차 오르기 시작하는 걸 보니 걱정이 앞섰다. 물이 계속 차면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물이 차 올라 오는 곳에서 자전거 바퀴를 돌리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꼼짝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저 까맣고 더러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비는 계속 내렸고 난 빨리 집에 도착하기 위해 최대한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는 점점 물 속에서 더디게 굴렀고 다리 힘은 쭉쭉 빠졌다. 집까지는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빗물인지 똥물인지 모를 거무틱틱한 물 속에 발을 넣었더니 무릎까지 찼다. 젠장... 깊기도 하다.

그 물 속에서 수영 하는 어린 아이들의 물장구에 얼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맛은..? 그냥 텁텁했다. 그런데 옷도 다 젖고 신발도 젖고 자전거도 젖고 아예 이렇게 망가져 버리니 맘이 편해졌다. 무릎 근처가 살살 간지러운 것만 빼면 그렇게 몹쓸 느낌은 아니였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해야 하나? 모두가 함께 망가졌을 때 공유하는 기쁨 같은 것...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땐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가 토마토와 함께 범벅이 된다거나 우리나라 보령 머드축제처럼 서로 몸에 진흙을 발라가며 즐거워 하는 것 같은... 뭐 좀 비유가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빗물에서 수영을 하는 꼬마 아이들에겐 그것은 일종의 축제였을 테고, 모두가 홀딱 젖어 버린 그 시간의 공유는 중국에서가 아니라면 힘든 경험일 테니 난 그것을 축제라고 말하고 싶다.

비가 내리면 이상한(?) 강이 생기는 중국의 엽기적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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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의 봄 하늘은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바람으로 뿌옇게 변했다. 사람들은 온갖 더러운 것들의 온상지라며 중국을 탓하는데 바람이 그렇게 부는 걸 중국 사람들이라고 막을 방도가 없다. 사막에 나무도 심어보고 인공비를 뿌려보기도 하지만 사막에서 나무가 잘 자란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인공비도 내릴 때 뿐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경험하는 황사바람은 그나마 꽤 나은 편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미세한 모래바람이 아니라 모래폭풍이 이는데 심하게 불 때는 걷는 것도 힘들고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 주위에 있는 무언가를 붙들고 의지해야 한다. 두 발을 땅에서 떨어뜨려 바람에 몸을 실으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세워둔 자전거나 입간판 등이 쓰러지는 일은 다반사고 쓰레기들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바람에 섞인 돌 조각은 가끔 몸에 피를 내기도 하고 눈을 아무리 작게 떠도 모래를 피할 수가 없다. 한 번은 배추랑 파 같은 것들이 바람에 날아가길래 '아이고~ 김치거리 날아간다..' 며 농담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여간 바람이 심하게 불어댈 땐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날이 좋다. 모래가 덮어 버린 누런 하늘 빛이 모든 사물을 부드럽게 다듬어줘서 좋고, 바람이 만들어 내는 을씨년스러운 소리들이 공기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이런 날에 나는 바짝 마른 스폰지가 된다. 영화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너무나 잘 스며든다. 정신없는 바깥의 상황과 대비되는... 마치 저 험난한 폭풍 속에서 구출되어 안전한 공간에서 보호받고 있는 듯한 특별한 느낌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하늘을 떠 다니는 쓰레기들은 영화 속 소품이고, 부서져 날아가는 잡다한 조각들은 죄다 사연을 싣는다. 어쩌면 저 폭풍 뒤엔 도로시의 빨간 구두가 반짝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아니, 나는 참 간사하다. 밖에서라면 몸에 달라 붙는 쓰레기들을 걷어내며 몹쓸 중국이라며 욕을 해대고 있었을 텐데 집 안이라고 이렇게 감상적으로 변해 버리니 말이다.

아! 대신 창문이 잘 닫혀 있는지 꼭 확인해야한다. 중국의 창문은 미닫이가 아니라 여닫이 방식이 많아 틈이 많이 벌어지는데 그 조그만 틈을 그냥 지나쳤다간 서그럭거리는 모래들 때문에 꽤 오랫동안 청소를 해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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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이 되도 끝날 줄을 몰랐다. 피곤함을 호소하던 내 몸은 불이 붙는 중국 술을 한두 잔 들이킬수록 파리해져갔고, 결국엔 이성과 감성을 분리시켜 놓았다. 잠이 비켜간 지는 오래였다. 술은 각성제 역할도 아주 잘 해낸다.

집에 돌아가야 했다. 더 이상 버텼다간 며칠을 고생할 게 눈에 훤했다. 다들 지쳤는지 붙잡는 사람도 없어 조용히 가게 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나갔다가 또 들어 오고를 몇 번은 했던 것 같다. 분명 어둠이 깔릴 무렵 어슴프레한 하늘을 뒤로 하고 들어간 곳인데 똑같은 빛깔의 하늘이 앞서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멈춰 버렸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처음 보는 하늘 색이었다. 뿌옇고 탁한 새벽 하늘이 아니라 파랗고 깊은 투명한 빛의 하늘이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는 중국의 새벽 하늘을 보고 제목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너무 예쁜 하늘을 봐서 그런 건지 새벽 바람이 차가워서 그런 건지 소름이 돋아 버린 팔을 비비며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한참 동안 찬 새벽 공기에 술 기운을 뱉어내며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얼른 일어났다. 우리 집은 5 층이었다. 그 곳에서라면 좀 더 선명한 색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에 묶인 자물쇠를 풀어내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신발을 신은 채로 양타이(베란다) 문을 열어 제꼈다.

그리고 만지면 쏟아질 것 같은 촉촉한 하늘을 바라보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주 행복하게...

그 후로 가끔 이쁜 새벽 하늘이 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거나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는데 하늘은 그 보다 더 가끔 내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빛의 하늘을 선물해 주곤 했다.

난 지금도 누군가가 '중국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하고 물으면 '새벽 하늘 빛' 이라고 말한다.



위의 얘기들은 어쩌면 중국이 너무나도 그립던 지난 몇 주간의 열병이 만들어낸 러브레터 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열병은 근 한 달이 넘도록 중국이야기를 연재하지 못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나의 어줍잖은 사랑 고백이 불편하지 않았길 바란다. 더불어 내 작은 이야기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했다면 나는 정말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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