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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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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12-08-13 16:04 조회1,6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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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0

- 군고구마 친구

2003. 06. 26 목요일
딴지관광청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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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밤이 참 길다. 밤이 길면 오래 잘 수 있어서 좋다는 잠 귀신들도 있고, 외로워서 허벅지를 벅벅 긁어댄다는 애정결핍자들도 있고, 공부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는 보기 드문 범생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기나긴 밤을 맨입으로 버텨야 하는 게 곤욕인 군것질 대마왕도 있다. 그게 바로 본인이다. 군것질대마왕 레인! 그래서, 이곳 중국의 겨울 밤은 한국보다 배는 더 길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라면, '찹쌀떠억~ 메밀무욱~' 까지는 아니더라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오뎅,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비닐 안에 잘 말려 있는 순대, 고추장 양념이 잘 베인 떡볶이, 흥건한 기름 위에서 뒤집어지는 호떡, 달콤한 팥이 가득 들어 있는 붕어빵(헥헥~ 그만하자 침 나온다) 등등... 을 사먹을 테지만 여긴 중국이다. 그런 게 있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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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나는 노트를 꺼내 먹고 싶은 것들을 전부 그려본다. 대개의 경우는 더욱 허기에 지쳐 노트를 깜지로 만들어 버리지만 가끔은 정말 이 음식들을 다 먹은 듯한 착각으로 행복하게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 시장 어귀에서 군고구마를 발견했다. 아니 그것보다 군고구마가 담겨져 있을 법한 드럼통을 먼저 발견했다. 한국에서처럼 길게 드러누운 드럼통이 아니라 똑바로 세워진 드럼통이었지만 왠지 그 안에 군고구마가 들어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곧 누군가가 다가서자 그 드럼통 안에서 시커먼 군고구마가 꺼내졌다.

겨울 밤 시원한 김치를 얹어 군고구마를 먹어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알 것이다. 까맣게 그을린 껍데기를 천천히 벗겨내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구마를 호호 불어 한 입 깨물면 뜨겁지만 달콤한 고구마 속살이 입 안에 착 달라 붙는 그 느낌...

냉큼 달려갔다. 한 근(중국은 대개 근으로 달아서 판다고 얘기했었지?)에 1 ~ 2 원 정도 했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거뭇한 군고구마를 몇 개 손저울에 얹었더니 4 원이란다.

아저씨가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어준 고구마가 식을까바 잠바 안에 품어 버렸다. 잘 부화되어서 두 배로 불어났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엔 고구마가 끊이질 않았다. 차가우면 차가운대로, 뜨거우면 뜨거운대로, 밤고구마는 김치에 얹어 먹고, 물고구마는 입안에서 죽을 만들어가며 긴 겨울 밤 입 속의 즐거움을 만끽했다(덕분에 겨울이 끝나결 무렵 양 볼에 살이 오동통 올랐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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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중국 거리엔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마땅한 군것질거리가 없는 중국에서의 군고구마는 간식으로도 그만이고, 한 개를 먹어도 속이 든든해져 식사 대용으로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들 중에는 유독 어린 아이가 많았다. 아니, 어린 아이만 눈에 띈다는 말이 맞을 거다. 아이들은 자기보다 조금 더 큰 드럼통을 손수레에 싣고 한 자리에 진득하니 서 있기도, 작은 지게에 덜어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 추운 겨울, 따뜻한 집 안에 앉아 엄마, 아빠의 사랑 받으며 사다주는 군고구마를 먹어야 할 나이에 변변치 않은 옷차림으로 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으니 그 쪽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난 조금 거리가 멀어도 고구마를 살 때는 꼭 어린 아이가 파는 곳에서 사곤 했다.

어느 날..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도 군고구마를 파는 꼬마 아이가 나타났다. 발그스레한 볼 주변이 하얗게 터 있고, 코 밑에 콧물이 말라 붙어 있지만 귀엽게 생긴 열살 정도 되보이는 여자아이였다. 혼자 있는 날이 많았지만 가끔 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날도 있었다.

난 곧 그 아이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매번 고구마를 사기만 하다가 몇 번 봤다는 친숙함을 무기로 말을 걸어봤다.

'몇살이야..?', '동생은 어디갔어?', '어디 살어?', '혼자 하는 거야.?'

그러나 꼬마 아이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대답 한 번 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얇은 분홍색 비닐 봉투에 고구마를 담아서 내게 건네주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동생과 얘기하는 걸 듣지 못했더라면 난 아이가 말을 할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이가 날 속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처음 말을 걸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심코 넘기고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 살 때보다 고구마의 개수가 적은 것 같았다. 다음 날 다시 고구마를 사며 자세히 보니 저울을 들고 있는 손의 새끼 손가락이 저울의 끝을 지긋이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중국의 많은 상인들은 손저울을 이용해 물건을 달아 파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대단한 손기술(?)을 이용해 무게를 속여 돈을 더 받아낸다).

그래봤자 1 원도 차이가 나질 않을 텐데 벌써부터 시장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꼬마 아이가 측은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도 그리 모질지 못해 속아 사는 걸 알면서도 꾸준히 그 곳에서 고구마를 사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아이도 꾸준하게 내게 고구마를 속여 팔며 내 질문을 무시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 무렵,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고 들어오다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군고구마 꼬마 주인과 마주쳤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내게 웃음을 보이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가 무엇에 놀랐는지 금방 손을 내리고는 이내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얼른 자전거 머리를 돌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 오늘은 웃기도 하네?', '집으로 가는 거야?', '많이 팔았어?', '내가 도와줄까?'

역시나 대답이 없었다. 좀 전엔 웃기도 하더니 지금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웃음을 보여준 꼬마의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자기도 모르고 내게 손을 흔들다가 그간의 뾰루퉁했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는지 얼른 손을 감춰 버리는 그 모습도 너무 이뻤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매일 집에 들르는 막내 삼촌의 친구가 좋았지만 말을 시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귀엽다고 볼을 쓰다듬으면 화를 내며 울어대던...

다음날 어김없이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꼬마에게 고구마를 사면서 말을 건넸다.

'우리 친구할까?'

아이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드럼통에 손을 넣어 잘 구워진 군고구마를 꺼내 저울에 올려놨다. 고구마가 서너개 꺼내어질 때까지도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저울 끝에 매달려 있어야 할 새끼 손가락이 없다. 항상 같은 위치에서 살짝 힘을 줘가며 무게를 더 늘렸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다른 네 개의 손가락과 함께 나무 저울을 잡고 있었다.

대답을 한 거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꼬마는 내게 속임수를 쓰지 않으며 나의 '친구'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한껏 웃으며 고구마 봉지를 받아들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아이는 그후로 내게 한번도 저울의 무게를 속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말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내 질문에 대답은 없었지만 가끔 새끼 고구마를 덤으로 주기도 했고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수첩 등 작은 선물을 주면 자기가 생각하는 금액의 수 만큼의 고구마를 건넸다. 내가 받지 않으면 자기도 선물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무언의 친구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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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리고 있었다. 꼬마의 군고구마 드럼통은 이제 매일 나타나지 않았고 나도 새로운 간식 거리를 찾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꼬마는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짜이찌엔...(再見/zaijian,안녕)'

더 이상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내게 건넨 말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왜 그토록 말을 안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외국인인 내가 어색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소문으로만 들었던(아이를 시켜 장사를 하게 하고, 그 돈을 가로챈다는) 못된 어른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주고받은 말이 없어도 우린 친구였다(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아이의 손저울에서 새끼 손가락이 떠난 날부터 우린 친구였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없어질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는 건데...

가끔 예쁜 옷을 입고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면 내 고구마 친구가 생각난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의 말 없는 친구는 커다란 드럼통이 얹혀진 손수레를 끌고 어딘가에 서 있을 텐데...

만약에 내가 중국에서 한 번 더 겨울을 맞았다면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그 고사리 손으로 꺼내어지던 군고구마를 맛볼 수 있었을까...? 아니, 친구는 날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장마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바람이 쌀쌀해지니 꼬마 아이의 드럼통이 생각난다. 그리고 노랗게 익었던 그 군고구마도.. 또, 단 한 번이었지만 내게 웃음 짓던 아이의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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