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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의 잔기술] Ep.03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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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70-01-01 09:33 조회2,0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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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니코네 집과 이탈리아 엔디네 집을 장식하고 있는 서퍼들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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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힘에, 그 사람들의 힘에 지금 나도 많이 기대며 산다. :)>


그렇다. 사람!

모든 건 네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달렸다.
동시에 네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렸다.

이것은 카우치 서핑의 시작이자 끝! 최대 장점이자 맹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호스트와 서퍼는 처음 만났지만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사이처럼 짧게는 몇 시간 동안 길게는 며칠간 한 공간에서 지낸다. 얘랑 나는 전생에 오성과 한음이었나 싶게 죽이 딱딱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여행 계획도 바꾸어 가며 더 머물게 되는 일도 생긴다. (3일 있으려던 프랑스 니스에서 10일을, 단 하루 있으려던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9일을 눌러앉아 버렸다!)

늘 그렇다면 좋겠지만 사람이라는 울퉁불퉁한 존재들이 만나 벌이는 일인 이상 각종 사건 사고, 없었으면 좋을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겪은 것은 주로 나의 성별과 인종(혹은 국적)에 관련된 것들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S라는 자는 그가 작성해 놓은 프로필 내용과 겉모습만 보자면 여유롭고 개방적인 신사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처음 만난 날의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해 보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만한 아주 단순한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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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무더웠던 남프랑스 뙤약볕 아래 현기증이 몰려왔다. 나 역시 GNP내지 각종 자본주의적 지수로 따졌을 때 '가난'하다는 나라들을 알고 있고 그 나라 사람들을 한국에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나라를 칭하여 Poor Country라고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게다가 당사자 앞에서.

이것은 가벼운 예였고, 성적인 발언 역시 있었다. 분한 것은 당시 그것이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인지, 이 정도에 내가 발끈하면 분위기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닌지 혼자 헤매다가 말았다는 거다. <인내 + 내 탓이오>의 미덕은 왜 그럴 때 십분 발휘되는지...

하지만 며칠 후 만난 진짜 신사 루이스 아저씨에게 이 이야길 하자, 그는 즉시 S를 대신해 깊이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해. 같은 프랑스인으로서 정말 창피하구나.
그건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의 문제야.



아저씨 덕에 내내 찝찝하던 마음이 풀렸다. 이후로 무언가 “엥?” 하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던 차에 니스에서 호스트였던 로잌과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결과는 절대 달랐다.

로잌은 내게 한국인의 이성교제에 대해 꽤 깊은(!) 질문을 했고 나는 "Wait!"을 외치고 옆에 있던 그의 친구 버지니(여자)에게 이 정도 질문이 프랑스에서는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쟤가 나를 공격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버지니는 그 정도라면 딱히 과하지 않은 거고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무시하라고 했다. 로잌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그런 질문이 실례면 다신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난 무조건 우리나라 문화랑 다르다고 해서 거부하거나 화를 내려는 게 아니야. 너희 나라 문화가 수용하는 선에서 나 역시 그를 존중할거야. 여긴 프랑스니까!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무난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고 어떤 사람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문화차이고 뭐고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조건 당신의 직관을 믿어라. 더러운 건 세상 어디에서나 더러운 것이고 차이로 인한 놀라움과 더러운 것에 대한 역겨움은 분명히 구분이 간다. 배려가 없는 사람을 만났다면 당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흉악한 표정을 짓고 짐을 싸 나올 것을 권한다. 참고 인내하고 웃고 착하게 구는 건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나 좀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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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 문제도 생각해 보자. 이것은 당신이 호스트일 경우 조금 더 신경쓰이는 부분일 거다.

호스트가 집에 없을 때 서퍼는 집에 머물 수 있는가?
즉, 나는 서퍼에게 열쇠를 맡길 수 있는가?

처음 카우치서핑을 시작한 벨기에에서의 첫날, 오후 12시경 도착해 짐을 풀고 있으니 니코는 "나 지금 친구네 이사도우러 갔다가 오후 6시쯤 올 거야!" 라며 집열쇠를 건네고 외출을 했다. 나는 순간 내가 놓친 어떤 것을 하나 발견했다.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호스트들은 학교나 직장에 가기 때문에 낮에는 집이 비기 일쑤다. 여행자들은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지만, 호스트가 나가는 시간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들어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피곤한 여행일정 중 언젠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때 역시 찾아오기 마련이니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 될 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 프로필 페이지에 명시해 두지 않는다. 그래서 나 역시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 있었던 자원봉사지에서 열쇠라는 쇳덩이가 없이 살았던 지라 열쇠에 대한 개념은 새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호스트의 프로필에 열쇠에 관한 아무 언급이 없을 경우 이는 "열쇠를 맡긴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는 아무 쪽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호스트가 할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서퍼에게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는지, 수건이나 베개커버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이나 음식, 그리고 열쇠까지... 무얼 주던 그건 호스트의 재량이다. 어떤 언급도 없다면 서퍼가 간단히 물어보면 될 일이다. 묻는 것이 왠지 껄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만났다가 예상외의 상황이 생기면 당신의 여행이 껄끄러워지지 않을까? 내가 그랬듯 말이다!

시칠리아에서 만난 호스트 P는 "I'm Open minded! easy going person! I love to be your friend." 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호스팅 경험도 많았다. 그래서 열쇠정도는 맡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찾아갔으나 짐작은 짐작으로 끝났다. 나는 돌아다니다가 중간에 집에 와서 씻거나 쉬고 다시 나가는 패턴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 드나들기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내겐 꽤 큰 불편함이었다. 미리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다. 99%.

심지어 미리 한번 만난 후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호스팅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프로필에 명시한 호스트도 봤다. 일종의 인터뷰를 하겠다는 거다. 그럼 인터뷰 후 호스트가 “No”라고 한다면 그 서퍼는? 아무리 여행이 복병의 연속, 임기응변의 향연이라 해도 나로서 이건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서핑할 때 말야. 호스트가 꽤 많은 현금을 집에 가지고 있었어. 그 돈뭉치를 그냥 식탁위에 두고 외출하고 그러는 거야. 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조차. 나를 완전히 믿는다는 거지.”

루이스 아저씨는 서울에서의 서핑 경험을 이야기하며 흐뭇한 마음을 숨기질 않았다. 자기 호스트의 마음열림을 칭찬하는 것임과 동시에 자기가 이렇게 신뢰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뿌듯했던 거다.

처음 보는 사람을 믿으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무리다. 처음 보는 사람들 간의 짧은 만남, 하지만 무한 신뢰가 요구되는 구조... 이것은 모순일수도, 모험일수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카우치 서핑에 동참하고 낯선 이를 자기 집에 들이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이 부분 역시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 집에 가는 거 위험하지 않아?” 라고 묻는 친구에게 내 대답은 늘 이거다.


그럼 나는? 나는 안전한 사람인가?

나의 호스트들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당연하다는 듯 열쇠를 맡겼으며 (내가 딱히 믿음직해서가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욕조, 정원, 부엌 등 그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네 집처럼 생각해"라며 활짝 열어 주었다. 그들이 항상 신뢰할 만한 서퍼들을 만나서였을까? 그것은 아닐 거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카우치를 빌려주는 의미가 없기 때문일 거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 누군가를 우선 신뢰하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만의 하나 신뢰를 잃는 일이 생겨도 그 다음 누군가에게 다시 문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내가 본 그들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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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만큼 오픈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자문할 것!
사진은 내 평생 만난 사람 중 가장! 심하게! 오픈된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모든 호스트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호스팅을 시작했지만 내가 받은 것만큼 주지는 못한다. 그저 되돌려 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친구에게 꾸어주듯 호스팅을 시작했다. 나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카우치서핑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오픈하되 나 자신을 압박하진 않을 생각이다. 내가 이만큼인 사람이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에 당당할 것. 열쇠를 주지 않는대도 서퍼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는대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단, 무엇을 줄 수 있는지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가, 그리고 서퍼가 사전에 알아야 한다는 것!

호스트와 서퍼가 서로에게 공히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이지만 일단 먼저 여는 쪽은 호스트다. 주로 서퍼역할이었던 나로서는 호스트들에게 존경심을 느끼곤 했다. 그야말로 처음 본 내게 자기 집 열쇠를 넘긴 사람들 아닌가? 나의 뭘 믿고? 나도 가끔 나를 못 믿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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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아저씨를 살짝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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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아저씨의 다부진 한국어 손글씨>


육순이 넘은 이 프랑스 신사는 마라톤 마니아, 그리고 한국 마니아. 서울 마라톤, 춘천 마라톤을 뛰셨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신다. 일정이 맞지 않아 그의 집에서 머물 수 없었지만 한국인이라면 무작정 반갑고 돌보아 주고 싶어 사이트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인 나를 초대해 든든한 점심을 대접해 주셨다.

나는 그저께 서울에서 3개월간 장기체류하겠다는 독일인 마티아스로부터 카우치요청을 받았다. 기간이 긴만큼 돈을 지불하겠다고 한다. 비용을 떠나 3개월이 너무 벅차기에 거절했지만 그와 그의 여자친구를 초대해 저녁밥을 지어주기로 했다. 마티아스와 메일을 주고받다가 문득 루이스 아저씨가 떠올랐다. 마티아스가 내게서 ‘호의‘라는 것을 받는다면 그것은 루이스 아저씨가 주는 것이니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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