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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까올리의 독(獨)남아 여행기] Ep15. 재앙의 발원지, 프놈펜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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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70-01-01 09:33 조회6,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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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까올리의 독(獨)남아 여행기]

Ep15. 재앙의 발원지. 프놈펜의 밤거리.

2011. 07. 14. 화요일
노매드 관광청
콘까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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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계속 뒤척이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이 땅 캄보디아는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아 괜히 울쩍하다. 왠지 술이라도 한 잔 걸쳐야 할 것 같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거리로 나갔다. 밤 열한시 밖에 되질 않았는데도 인적이 드물다. 낮에 그렇게 번화했던 왕복 8차선 대로엔 차들만 지나갈 뿐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유흥가의 불빛이 왠지 모르게 차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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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프놈펜은 이렇게 밝고 활기차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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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에 잠깐 정전이 되었을 때 실제로 찍은 사진.
진짜 눈에 뵈는 게 아무것도 없음>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좀 걸었다. 이 오밤중에 맥주를 사러 나온 내가 웃겼다. 나무늘보처럼 침대에 자빠져 있다가 맥주를 찾아 나설 때는 어두운 밤속에 빛나는 맹수의 눈과 같다. 빛나는 내 눈빛 때문 이였을까? 시커멓고 비쩍 골은 남자 5명이 내 앞에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다. 순간 “왠지 강도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어어어 하는 사이 그들은 총을 겨눈 채 내 목을 뒤에서 잡고선 골목으로 끌고 갔다.

끌려가는 6~7초 동안 부모님 생각도 하고 친구들 생각도 하고, 총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도 하고, 하늘에 기도도 드리고, 불경도 읊고, 찬송가도 부르고, 예전에 내가 잘못했던 모든 일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반성까지 마쳤다. 이미 살기위한 비굴모드로 들어갈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살기 위한 탐구로 인해 내 뇌는 폭발적으로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질질질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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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놈의 술이 문제다&gt

그놈들은 이상한 쓰레기장에 나를 내팽개쳤다. 그러더니 네놈은 내 양팔과 양다리를 잡았고 한놈은 총을 내 코앞에 들이댄 채 내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무려 다섯 놈이다). 철저한 분업화였다. 왜 강도질에 5명이 필요한지 느끼는 순간이다. 군대에서도 자세히 못 본 권총을 그렇게 코앞에서 보긴 처음이었다.

순간 이 총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절대로 진품 여부를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나 겁이나 한국말로 “쏘지 마세요” “쏘지 마세요”를 외쳤다. 사람이 정말 급해지니 겸손은 필수요 존댓말은 옵션이다. 비굴이고 뭐고 없었다. 그냥 살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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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거리에는 학교도 안다니고 할 일없이 배회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저들이 올바른 꿈을 가지고 어른이 되면 좋을 텐데...>

몸이 달달달달 떨리는 와중에도 이리 저리 적당하게 비틀며 내 몸을 뒤지는 놈에게 최대한 협조해줬다. 그래야만 총을 안 쏘고 나를 조금이라도 기특하게 봐줄 것 같았다. 물론 격한 몸부림을 부리거나 소리를 치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배운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나를 제압하는데 5명까지는 필요가 없었다. 그냥 총을 든 한 놈이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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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난하고 찌질 하고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강도를 당하는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수중엔 돈이 상당히 많았다. 게스트하우스의 열쇠가 부실해 그냥 복대를 차고 이 밤중 거리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차라리 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까지 생각했다. 그만큼 살고 싶었다. 다만 생각보다 너무 많은 돈이 나에게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내몸을 훓던 그 놈의 손이 내 배에 닿자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내 복대에서 나온 800달러를 득템했다. 100만원 돈이다. 그들은 큰돈을 보더니 갑자기 급흥분하며 정신을 못차렸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분위기다. 내 체크카드를 이리저리 보고선 쓸모 없다 생각했는지 툭 던져준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죽지는 않을 것 같은 안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객기를 부렸다.

“야 #%#@들아 핸드폰은 주고가야지!”

아 살았다는 기쁜 마음에 너무 오버했나 보다. 핸드폰을 달라고 크게 소리치니 그들도 깜짝 놀라며 도망가다 말고 총을 겨눈다. 난 괘씸하게도 그들에게 도전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들끼리 잠깐 상의하더니 핸드폰을 툭 던져주고 갔다. 아주 나쁜 놈들은 아닌가보다.

그들도 이러한 행위와 긴장감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5분정도를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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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다시 찾은 비극의 장소.
아무리 밤이라도 이렇게 오픈된 곳에서 강도를 당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정신을 차려보니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있는 느낌이다. 놈들이 800불을 보고 흥분했는지 주머니에 있는 10달러 정도의 캄보디아 돈과 담배는 그대로 나뒀다. 담배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를 하며 후미진 쓰레기장에 앉아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후~달다. 죽은 사지에서 살아 나온 뒤 피는 담배가 이런 기분일까?

10분정도 그곳에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일어나서 발길이 향한 곳은 숙소가 아닌 가게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3달러어치 맥주와 약간의 안주, 물 한 병을 사고선 비닐봉지에 담아 소중히 안고 숙소로 왔다.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모기가 많아 10분 만에 방으로 들어갔지만). 가슴이 계속 쿵쾅거리면서도 의외로 담담했다. 살아왔다는 자체에 감사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를 겨누고 있던 총부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무섭다.

“아 이제 여행은 끝인 건가”

“프놈펜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표나 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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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 분명히 내 돈을 가지고 튄 놈이 있을 것만 같아 부아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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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인 절망으로 인해 역시 또 늦잠을 잤다. 오늘은 일어나서 오줌 누는 것보다도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친구들에게 단체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집에 얘기하면 너무나 걱정하실까봐 차마 얘기하진 못하고 친구들에게만 잠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소수의 몇몇 친구에게 큰돈을 꾸기 보다는 조금씩 여러 명에게 빌려서 친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사실은 나를 위한 분산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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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 홀로 여행 중 패스트 푸드점에 방문하는 건 기분 좋은 호사다.
프놈펜에서 유일하게 봤던 KFC>


우선 단체문자를 20곳 정도 돌렸다. 이 20명은 자체적으로 엄격한 심사 기준을 거쳐 간택이 된 나름 영광의 인물이다. 물론 본인들은 어쩌다 나랑 엮인 더럽게 운이 없는 친구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지킬껀 지켜야 한다. 군 제대 후 처음 연락하는 후임에게 “10만원만 꿔죠” 라고 할 정도의 염치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의 문자를 단체로 보낼 철면피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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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답문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약 18개 정도의 문자가 전송되고 있을 시점에 왔으니 빠르긴 빨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실망스럽고 막돼먹었으며, 거기다 아주 간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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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불이 났지만 심호흡을 하며 참았다. 천천히 전화로 친구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 준 후에야. 친구의 진심(?)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물론 친구의 사과와 함께 격려금까지 챙길 수 있었다.

의외로 많은 친구들은 보이스 피씽인줄 알고 전화를 해서 확인했고 심지어 문자로 욕을 해대는 친구까지 있었다. 강도가 우글대는 캄보디아도 무섭지만 전화 한 통화로 사람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우리나라가(불법중국인일수도) 더 잔인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긴 로밍비가 비싸 오는 전화를 대부분 안 받았으니 충분히 의심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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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이 오기 직전 프놈펜의 하늘
강도를 당하고 저 하늘을 보면 지옥이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런 친구 저런 친구 모두 과정은 달랐지만 대부분 선뜻 격려금을 내어주었다. 진짜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닌가 보다. 결국 난 잃어버린 돈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을 체크카드에 충전할 수 있었다. 은행에 달려가 잔고를 조회해 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다. 끼야오! 돈이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다니. 어제의 비극은 금세 까맣게 잊은 채 현금인출기 앞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한술 더 떠 이왕 빌릴 거 한 30명한테 연락할걸 그랬나 하는 몹쓸 생각까지 들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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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이 충전되고 나니 그 열악한 프놈펜 거리마저도 꽃밭으로 보인다.>


어쨌든 다시 여행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았다. 사람들의 온정이 나를 일으킨 것이다. 아니다 솔직히 격려금으로 예쁘게 포장한 온정들이 나를 일으키게 한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는 솔직할 수 있다! 지갑도 다시 두둑해졌겠다. 넉넉해진 돈으로 프랑스 식당에 가서 거금 15달러를 들여 만찬을 즐겼다(이날 난 미쳤었다). 이름도 모를 무슨 생선구이를 시켰는데 무식하게도 레몬을 너무 많이 뿌려서 후회했던 기억만 난다. 그렇게 난 참 단순하게도 절망에서 다시 행복함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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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15달러짜리 생선구이를 먹었던 프랑스 식당.
먹을 것 가지고 된장짓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팔이 없는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나 구걸을 한다. 또 강도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몇 초 망설이다가 약간의 적선을 했다. 원래 5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적선을 절대 하지 않는데 이 아저씨에게 적선을 안하는 건 인간적인 외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 돈을 가지고 튄 놈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도 나처럼 어수룩한 여행자를 찾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이렇게 골골대는 나를 생각하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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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슬럼가.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한숨으로 살아간다.>


어제 있었던 일들은 지금까지 그래 오래 살지 않은 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충격이었다. 태어나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가장 근접했던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놀란 것도 처음이었다. 돈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역시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아주 조심스럽게 해본다.

어쨌든 한 번 큰 재앙을 당했으니 앞으로는 정말로 조심할 것이다. 무서운 곳에는 절대 가지 않을 것이고 남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곳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원래 내 성격대로 소심하고 웅크리고 궁상맞지만 안전하게 다닐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사람들과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에 더욱 감사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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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행은 쭉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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