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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안나이트]대사님, 저와 술 한 잔 하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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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70-01-01 09:33 조회3,2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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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안나이트]

대사님, 저와 술 한 잔 하실라우?

2011. 04. 05. 화요일
노매드 관광청
슈리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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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오매불망하던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었다. 막바지 잔손질을 하고 있을 때 낯모르는 중늙은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일꾼 한명이“대사님”이라고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스님이라구? 요새는 절에서도 새 신자 입도를 위해 방문하고 다니나?”

삭발은 했지만 승복은 커녕 때가 꼬질꼬질한 갈중이(감물들인 무명바지저고리) 차림새의 남자는 대단히 무례했다. 일꾼들 새참으로 내놓은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손가락으로 돼지고기를 집어 된장에 꾹 찍어먹는 폼이 교양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어 보였다.

“허, 참! 낭 고르젠허민 쉽지 않허켜. 지붕이 벌건색이난 어지간한 꽃낭은 기를 못피큰 게 어떵 구색을 맞추코?”(나무 고르기가 어렵다. 지붕이 빨간색이니 어지간한 꽃나무는 기를 못피니 어떻게 구색을 맞출까?).

우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은 ‘빨간 지붕의 그림 같은 집’을 함부로 깎아내리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대사는 무슨 얼어 죽을 대사? 완전 땡 중 이구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특별히 할 만한 사람도 없고 주변사람들이 모두 그를 추천하였음으로 결국 정원일은 대사님이 맡기로 결정되었다. 오십은 훨씬 넘었으련만 대사님은 참 힘도 좋았다. 커다란 정원석을 혼자 불끈 들어 옮기기도 하고 나무 심을 구덩이를 순식간에 파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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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어느 날 무슨 일인가로 남편과 그 집을 갔다. 황개천을 끼고 바다가 빠끔하게 보이는 외딴집이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올레길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이 식물원을 방불케 그득했다.

호사스런 마당에 비해 비닐하우스를 겨우 면하게 엉성하게 지은 집안은 그야 말로 난장판이었다. 가지각색 살림살이가 굴러다녀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것이다. 대사님이라는 이름값을 하느라고 거실 한구석에 작은 불상이 있기는 있었다. 그 부처님조차 그 대사처럼 칠이 벗겨지고 모서리가 떨어진 채 먼지를 뒤집어쓴 더러운 몰골이었다.

녹차를 한 잔 마시고 나오려 할 때 초등학교 일학년이 겨우 될 만한 남매가 쪼르르 달려와 대사님 품에 안기며 어리광을 부린다.

“아빠 치킨 한 마리만 사줍서. 응?”
대사님은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파안대소를 했다.
"기여, 아방이 사오키메 지둘러라 흐흐흐. “
삭발의 늙은 대사와 어린 아들의 대화는 낯간지럽고 민망한 일이었다.

읍내식당에서 장삼녀(장비 세 자매)가 만나 수다를 떨고 있는데. 지나가던 대사가 우리를 보고 성큼 들어왔다. 박박 깎은 머리가 삐죽삐죽 자라서 불밤송이 꼴이고 추잡한 갈중이 차림새며 예의 없이 마실 것 먹을 것 싹 쓸어 먹는 품새며 말끝마다 부처님 타령을 일삼으면서도 주독이 올라 불그레한 주먹코며 게다가 쌍스러운 욕지거리도 거침없이 해대는 그는 영락없는 시정잡배였다.

우리의 술과 안주를 다 먹어치워 놓고도 족발을 시켜 싸들고 그 식당주인에게 김치 한통을 얻어내고야 갔으니 보통 뻔뻔한 게 아니었다. 대사에게 여섯 명의 아이가 있고 그 아이들의 어미가 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그날 들었다.

아니. 그 나이 그 인물에 팔난봉이란 말이야?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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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이듬해 봄부터 꽃을 피워냈다. 꽃나무마다 개화시기가 다른 것을 미리 계산했는지 순서대로 꽃을 피워내 일 년 열두 달 꽃이 없는 날이 없었다. 계단양쪽으로 심은 연산홍도 그 색깔과 시기가 달라 연분홍의 꽃무더기가 피었다 지고 나면 바로 진 분홍꽃. 새 빨간 꽃잎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대사님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중도 속인도 아닌 추잡한 사람이 갖은 능력은 묘한 의구심으로 남아 종당에는 내 머리를 지끈 거리게 만들뿐이었다.

딸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공항은 전국의 폭설로 아수라장이었다. 비행기는 한밤중에 제주에 겨우 도착했다. 섬의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눈길로 통행이 제한되어 남편은 마중을 나오지 못했다. 막 버스를 타기위해 뛰었다. 뒤에서 군복을 입은 청년이 성큼 양손의 내 보따리를 받아들고 버스에 자리를 잡아준다.

고마운 마음에 가방에서 찹쌀떡을 꺼내 권했다. 떡을 집어 먹는 손목 사이에 갈색의 염주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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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는 거칫했어도 귀밑머리 솜털이 보송한 것이 귀태가 있는 청년 이었다. 그 천박한 대사님에게 이렇게 귀공자 같은 아들이 있다니 참, 요상한 일이었다.
“대사님 아이들이 육남매나 된다고 하던데. 맞아요? 그리고 어머니도 안 계신다는 소문만 들었어요.“

청년은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대사님의 추잡한 스캔들을 젊은 아들에게 짓궂게 묻다니. 나이 값도 못한 내가 창피 했다. 청년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 저의 아버지는 원래 스님 이셨어요. 술이 과하기는 해도 예불도 꼭 드리고, 그리고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눈길의 한라산을 넘는 버스는 엉금엉금 기었다. 한없이 느린 버스에서 군복 소매 밑의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청년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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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육남매는 세 가정에서 들어온 아이들입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출을 해서 우리 남매가 길에서 갈 곳이 없을 때 지금의 아버님이 거두어 주셨어요. 제가 일곱 살이었으니 십 오년이 넘었군요. 제 여동생은 지금 부산에서 대학에 다녀요. 집에 있는 네 명은 그 뒤로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 애들도 다 저처럼 부모가 있지만 함께 살 형편이 못 됩니다.

막내는 그 애 어머니가 오년 전에 직접 데려다 놓고 그 뒤로 종적을 감추었어요. 아버님은 저희에게 꾸지람 한 번 하신 적이 없습니다. 노동을 하시면서 저희를 가르치는 생각을 하면 늘 죄송하지요. 지난 번에는 강원도까지 제 동생들을 데리고 면회도 오셨어요. 제가 얼른 제대하고 공부가 끝나야 아버지를 도울 텐데요....."

희끗한 눈발이 줄기차게 버스유리창을 때린다. 차가운 눈송이들이 내게로 흩날리며 녹아 흐르는 듯 가슴이 시려 와서 덜덜 떨렸다. 순간, 칠 흙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사각의 유리 창틀에 한 컷씩 빛나는 사진이 보인다. 무심히 보았던 어떤 기억의 장면이었다.

어느 봄날 신도리 바닷가에서 물질을 끝내고 나오던 어떤 해녀가 보말을 잡는 대사님을 보더니 제 구덕의 생물을 툭툭 털어주던 사진 한 장,

월라봉에서 마늘을 캐서 경운기에 싣고 가던 오 씨 아저씨가 대사님 집 마당으로 마늘다발을 휙 던지고 가던 사진 한 장,

농공단지 도축장에서 일하는 경수가 핏물이 밴 묵직한 비닐봉지를 대사님 오토바이에 묶어주던 사진 한 장.

“영험은 없으난 부처님은 맞수다게” 쌀 한 되와 초한자루를 들고 초하루 보름이면 대사님 집 먼지 낀 불상에 불공을 드리러 가던 보성 할머니들 사진 한 장.. 나는 땡 중에게 현혹된 무식한 할머니라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내 눈이 아무리 밝아도 내 뒤통수는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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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_AD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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