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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m magribia 쌀람 마그리비아] 20. 모로코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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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70-01-01 09:33 조회1,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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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m magribia 쌀람 마그리비아]
20.모로코에서 만난 사람들

2010. 7.27. 화요일
노매드 모로코 통신원
한지혜thru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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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시작했던 연재가 이제 오늘로 마지막이다. 2년간의 모로코 생활이 사무치게 그리워 그에 대한 잔상들로 써내려갔던 연재였다.

그 사이 다시 모로코에 한 번 더 다녀왔고 이제 연재도 끝이다. 한 번 다녀와서일까, 이제 그 지긋한 그리움은 사라지고 이젠 편안해졌다. 예전에는 모로코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리거나 그리워지면서 눈물이 났다면 지금은 모로코를 생각하면 편안하고 즐거워진다.

그간 많이 생각해봤던 건 ‘내가 왜 그렇게 저 나라에 집착했을까?’였다. 몸은 한국에 있으면서 마음은 항상 그 나라에 가 있었던 자신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모로코를 찾은 이유는 그 좋은 풍경도 아니고, 혼자만의 고즈넉한 삶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거기에 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글의 주제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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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 기사에서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주던 핫산의 뒷모습이다.

얼마 전 다시 간 그곳에서 낙타몰이꾼들을 보면서 맨 처음 사막여행에서 만난 낙타몰이꾼들이 많이 생각났었다. 그들과의 즐거웠던 수다와 농담들, 그리고 그들의 수수한 모습들이 많이 생각 났다.

사실 핫산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살다보면 생기는 선입견 때문에 괜한 친절을 의심할 때가 있는데 내가 핫산에게 그랬었다. 당시 일행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은 모로코에 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유럽여행을 하다 이제 막 모로코에 들어온 아이였다. 전자는 모로코 남자에게 선입견이 있고 후자는 선입견이 없었다.

친구에게 핫산이 보이는 과도한 친절을 오해하는 바람에, 우리는 계속 그를 조심하라며 경계했었다. 사실 모로코의 몇몇 젊은이들은 외국여자 하나 꼬셔서 밖에 나가 살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 1박 2일의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착한 것 같다고 줄 게 없어서 쓰고 있던 모자를 선물하고 왔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뭐하러 그랬냐면서 타박까지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홈피에서 그에 관한 글을 보게 됐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친구에게 보낸 메일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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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써 내려간 그의 메일은 허튼 선입견으로 한 사람의 진심을 속물로 치부해버렸던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선입견. 그건 사람의 생각과 눈을 가두어버리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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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메드 아저씨는 나에게 1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았다. 항상 아내의 부축을
받고 들어온 그는 수줍게 악수를 건네며 치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아내는 치료를 도와주기 위해 치료실 바로 앞 의자에 항상 앉아있었다. 약 30분의 치료가 끝나면 다시 악수를 하고 비쥬를 하고 조용히 치료실을 나갔다. 일주일에 세번 1년을 넘게 항상 봐왔다. 그 사이 그의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고, 나는 그와의 치료를 상당히 즐거워했었다.

떠난다고 이야기했을 때 서운해 하던 그들은 내 손 등에 키스를 해주며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었다. 무안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1년 후 다시 간 모로코에서 무하메드의 아내를 다시 만났다. 반가움을 표시하며 다시 인사를 나누자 그의 아내는 얼마 전 무하메드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갑자기 허무감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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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어느 메디나나 관광지를 가면 저런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바로 물장수다. 가방 안에 물을 넣고 다니면서 물을 판다. 몸에 좋다는 데 사실 정확한 건 아니고 성수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한 여름날 저렇게 컵 하나를 들고 돌아다니는 물장수아저씨들을 보고 있자면 참 세상살이의 어려움이 무겁게 느껴진다.

저 아저씨 어깨에 걸쳐진 물가방의 무게처럼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자기만의 무게에 따라 살아가겠지.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말이다. 혹은 무게의 제한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무거워도 이 이상은 줄 수 없게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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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장수 아저씨가 다가와 다짜고짜 각종 견과류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공짜니깐 함 먹어봐 돈 받는 거 아냐 이러면서 순수한 당신은 그걸 믿고 혹 받아먹을 수도 있다.

그러면 GAME OVER-.

당신은 이제 견과류를 사야만 한다. 왜냐면 아저씨가 당신이 사줄 때까지 떠나지 않고 계속 서있을 테니깐. 그 법칙을 알고 먹지 않은 나를 보고서 떠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분하고 서운함이 그득해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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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생긴 옥수수 파는 소년이 우릴 신기하게 바라본다. 마침 동행이 옥수수를 먹고 싶어 하기에 그가 먹을 걸 사면서 물어봤다.

“이거 짜니?”

아니란다. 그러면서 갑자기 기본적인 신상조사에 들어간다. 소년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고 있는데 옆의 동행이 갑자기 “악! 짜!” 친구를 보며 무슨 소리냐고 묻는 소년에게 답했다.

“너 잘생겼다는 소리야.”

돌아오는 길, 동행이 먹으려고 샀던 옥수수 2개는 버렸다. 솔직히 그건 너무 짰다.

모로코엔 장사를 하는 어린 아이들이 많다. 특히 구두닦이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껄렁하게 굴지 않고 열심히 사는 그 아이들이 내 눈엔 너무 이쁘다. 그래서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항상 세상에 빈다. 저런 아이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게 해 달라고.

에싸우에라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만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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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저씨가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우아도 하셔라~ 근데 무슬림인데 와인 먹어도 되나? 그의 사진을 찍는 걸 허락받기 위해 다가갔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어부란다. 틈날 때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려 판다고 했다. 저 과묵한 얼굴이 이야기를 나눌 땐 따뜻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참 멋쟁이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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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쁜 아가씨 둘은 내 단골빵집의 점원들이었다. 대개 모로코의 빵은 매우 단데, 이 곳의 빵은 참 먹기 알맞게 맛있었다. 하여 라밧에 갈 때마다 항상 들러 빵을 사오곤 했다. 처음엔 어찌나 새침하게 굴던지 손님이 들어가도 아는 척도 안하고 불친절함의 끝을 보여줬다. 결국 내가 먼저 불러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한 후에 계산하고 나왔다.

짜증났으나 다시 갈 수 밖에 없는 내 신세를 한탄하며 다시 들어간 빵집. 또 저들이 앞에 있었다. 작전을 바꿨다.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냈더니 그런다

“뭘 줄까요?”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인사하길 바랬나보다. 세 번째 갔을 땐 서로 먼저 나에게 와 빵을 건네며 물어댄다. "왜 왔어? 어느 나라 사람이야?" 대답해주고 돌아오는데 잘 가고 또 오란다. 그들의 무뚝뚝함이 자존심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 번째 들렸을때부턴 간단한 안부를 묻고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한국에 와서 내 또래의 외국인 아이가 싸지 않은 빵집에 빵을 사러 온 광경을 목격했다. 떠올려보니 그래도 외국인은 부자라는 인식이 짙은 모로코에서 그들은 내가 꽤 속된 말로 재수 없었을 게다. 생각했다. 내 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살게 되거랑, 먼저 눈높이를 그들에게 맞추고 다가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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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에서 만난 할아버지다.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집을 공개해주는 대가로 10딜함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허나 관광객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마을과 집을 보여주겠다고 하고 구경이 끝난 후에 그 말을 꺼내니 말이다. 당연히 여행패키지에 모든 비용이 포함 됐을거라 생각한 여행객은 마치 속은 기분이 들어 화를 낸다. 여기까지가 당시 나의 상황이었다. 원치 않은 돈을 지불하고 짜증이 나 있던 내가, 그 할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안 보이는 눈으로 아르간 오일을 만드는 법을 안 되는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마 저 영어는 자신의 생존법이므로 가이드로부터 배워서 외웠을 것이다. 잠깐 속았지만 집을 구경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 10딜함. 까짓것 소시지 하나 안 사면 되는 것을. 그래 서로 도우며 사는 거지. 할어버지의 서툰 영어가 내내 귀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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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시간을 기다리고 계셨던 어르신이다. 모로코 남자들은 모스크에 갈 때 다들 저런 차림으로 어깨에 1인용 돗자리를 걸친다. 가만히 앉아 멍한 눈으로 묵주 같은 걸 하나씩 세며 코란을 읊는 할어버지.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가 꽤 시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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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지부모님이었던 분들과 엄마의 동생가족들이다. 모로코인들에게 가족은 생활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부모와 자식관계도 끈끈하다. 하여 이들은 따로 노후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당연히 그의 자녀가 자기를 부양할 것이니까, 손녀나 조카를 맡아 기르는 것도 당연하다. 한 가족에서 좋은 이는 그 가족의 모든 친척들에게까지 좋은 이가 된다. 친척집에 한 달 이상 머무는 것도 친한 가족이라면 폐가 아니다.

낯선 타인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받아들여주는 순간 정말 내가 타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마음을 주는 사람들. 하여 난 아무렇지 않게 이들을 엄마라 부르고 아빠라 부르고 이모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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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등학교 5학년 소녀는, 엄마가 아프면 엄마 일을 돕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을 닦고 간단한 요리를 할 줄 안다. 나를 매우 좋아하는 이 소녀는 내가 하는 건 다 하고 싶어 했다. 나의 머리스타일 옷 입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다.눈에 빤히 보이는 아이의 새침함까지, 참 귀여운 소녀였다.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을 꼭 이 집에서 먹었다. 저녁을 먹고 차 한잔 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대략 밤 열 시가 훌쩍 넘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채비를 해하고 우리 집까지 배웅해주는 저녁 길이 2년 동안 유일한 나의 밤 산책이었다. 노래하고 장난치며 걷던 그 길이 이 소녀에게도 가장 즐거웠나보다.

새근새근 자다가도, 나갈 채비만 하면 부스스 일어나 옷 챙겨 입고 문 앞에 제일 먼저 서 있곤 했다. 소녀의 손을 잡고 가자~ 하면서 시작됐던 밤 산책길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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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엽지 않은가?
위 소녀의 동생이다. 내가 치료하던 아기였고, 자연스레 이 아이의 엄마와 내가 친구가 되고 어느 순간 이 집의 모든 가족일원들과 친구가 되었고 이들은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볼살이 유난한 우리 아가는 말을 못해 표정이 곧 말이다. 아는 사람이 오면 가만히 눈을 감고 뜨면서 스르르 웃으며 아는 척을 한다. 재밌을 때는 배를 손으로 쳐가며 소리 내어 꺽꺽 웃는다.

뭔가에 집중할 때는 눈을 가만히 모아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린다. 사진만 봐도 아가의 살갗느낌이 느껴진다. 다시 가서 만난 아기는 나를 잊지 않고 스르르 아는 척을 해줬다. 내 핸드폰 대기 화면인 우리 아가는, 사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르핀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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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가의 엄마와 아빠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절실한 이슬람 신자이며 사랑스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 가족을 만나서 한 시간만 대화를 나누면 이들에게 빠져들고 만다. 그들의 소소한 웃음과 착한 마음 배려는 세상의 상식을 초월하는 것만 같다. 저 사진을 찍을 때도 어깨에 손 좀 올리라 했더니 창피해서 안 된다며 10분 넘게 실랑이를 하는 거다.

이들 가족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즐겁게 사는 게 별거냐. 그냥 내 가족들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잘 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재밌게 살면 되는 거라고. 단 항상 예의를 지키고 법칙을 지키면서 말이다. 길을 가다가 어른에게 대드는 아이를 보면 조용히 웃으면서 잘못된 행동이라 가만히 달래는 아빠. 자기보단 가족 남을 배려하며 자기를 낮추는 엄마.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우리 부모님과 동생의 삶 입장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힘듦과 고독이 있었다.

가족, 사람.때론 우릴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지만, 사실 우린 그 존재들에게 가장 위로 받는다.사람은 사람에게서 행복을 느낀다. 때로는 방관자가 되어 남들의 삶을 바라보면 거기서 내가 찾는 행복의 답을 느낄 수가 있다. 그걸 한 순간에 느꼈던 어느날, 조용히 끄적거렸던 글 중 하나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기사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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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_AD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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