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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트래블로지] 46.리차드의 고뇌(2)- 어머니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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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매드 작성일70-01-01 09:33 조회4,2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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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트래블로지]

46.리차드의 고뇌(2)-어머니의 죽음

2008. 07. 04. 금요일
정신건강 테라피스트 권문수
(kwonmunsu@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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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_AD1@

[싸이코트래블로지]는 여행과 정신심리를 접목시키는 기사입니다.

미국에서 정신과 상담 일을 하고 있는 작가에 의해 시도되는 이 연재는 작가가 여행지에서 혹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 상담 사례들을 통해 우리 모두의 내면 여행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작년 말, 서른세 번째 글인 ‘리차드의 고뇌’ 편에서 리차드가 경험한 여러가지 어려움과 고뇌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에 대한 심리적 의지와 거기에 대한 배경 등도 어느 정도 언급했었다.

리차드에게 어머니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어릴 때의 자살시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잘 살아있는 것도 어머니 때문이고, 소련이 무너지던 그 시절의 혼란을 피해 미국에 올 수 있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그리고 간호사로 돌아가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것조차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dot3.gif리차드의 고뇌 지난이야기 읽기.


1bb-s.gif 리차드의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러시아에서 알려졌던 과학자였다. 그 때문에 이곳 워싱턴의 한 유명 대학교에서 소련이 무너지던 그 해에 그녀에게 교수자리를 줬고 이민을 후원했다.

나는 그녀와 리차드에 대한 문제로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삶에 대한 열정과 지식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그리고 자신감 넘치고 격의없는 그런 할머니였다. 그녀는 나이가 많아 얼마나 오랫동안 교수직을 수행할 지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대학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실험들을 매일 학생들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과학자라는 사실보다 교수라는 사실을 더 자랑스러워 했다.

“미국의 교수들만큼 바쁜 사람들이 없을 거에요 아마.

연구하는 것, 가르치는 것 그리고 사회 봉사하는 것, 이 세가지 일을 하는 게 교수들인데, 그런 균형을 맞추려면 항상 시간이 부족해요. 그런데 나는 사실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래도 난 교수일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은퇴할 생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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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은퇴의 의미는 나이가 차면 강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은퇴를 신청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그리고 주와 직장마다 그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은퇴에 대한 커다란 원칙에 대해서는 공통적인 규칙을 따르는데, 한국처럼 나이가 기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주의 교사를 예로 들면, 25년 이상 교사로 근무를 했을 때 은퇴신청이 가능하지만 은퇴연금을 100% 받지 못하지만30년 이상 근무를 한 후 은퇴를 하면 연금이 100% 보장된다.

또한 메릴랜드주의 교육 시스템에 속한 환경미화원들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종종 10대 후반 정도부터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30년을 일을 하고 40대에 은퇴를 하면 연금을 받게 된다. 실제로 아직 한창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40대에 은퇴를 하고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꽤 희한한 제도인 것 같다.

그런데 나이 육십이 넘어 교수로 임용된 리차드의 어머니 같은 경우는 은퇴연금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은퇴연금이 아닌 복지 연금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정신병이 있는 남편과 아들인 리차드를 더 잘 돌보기 위해서는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강단에 서야만 했다.

그랬다… 리차드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80세의 열정이 넘치는 그런 교수였다. 가족을 위해서 계속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그녀는 교수로써의 자부심을 더 강조했다.

2bb-s.gif 그녀의 암투병

그런 그녀가 암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나는 강한 여자요.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리차드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죽으면 그 아이… 아마 따라서 죽을 겁니다.”

정신분열증을 가지고 있는 리차드의 반응은 이러했다.

“내가 어머니를 살릴 수 있습니다.

약과 약초들을 개발해서 해가 떨어지는 정확한 시간에 투여를 한다면 모든 게 달라질 겁니다. 난 의사들을 믿지 않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 뭘 치료하겠다는 것인지 그들을 이해 할 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계획에 따라 준다면 어머니는 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리차드는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었지만 이러한 믿음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그의 처방 아닌 처방을 따라줄 리가 없었고, 암치료를 받는 그녀의 몸은 날로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리차드는 아픈 어머니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에 자신의 처방에 따르지 않는 그녀를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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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만족해하던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해야 했고, 집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씩 힘든 몸을 이끌고 리차드의 상담을 위해 병원 사무실로 찾아와 나를 놀래키곤 했다.

하루는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리차드를 위해 콘도미니움을 사 놓았습니다. 마치 원수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남편과 리차드는 나 없이 함께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다른 러시아인 노인들과 즐겁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리차드입니다. 그 아이는 심한 편집증과 정신분열증 때문에 그 누구와도 함께 살지 못할 것 입니다. 이제부터 내가 죽는날까지 내가 사준 자신의 집에서 아들이 혼자 살 수 있도록 트레이닝 시킬 것입니다. 테라피스트인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의 정신이 많이 아프기는 해도 여러가지 천재성이 있는 아이입니다. 본인이 강하게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는 아이입니다.”

3bb-s.gif호스피스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를 곁에서 돌봐야 한다는 리차드의 고집은 대단해서 그동안 단 하루도 어머니가 사놓은 집에서 기거하지 않았다. 물론 편집성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일 중 한가지가 어딘가에 고립되어 지내는 일이다. 좋게 생각하면 이런 어려운 시기에 혼자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막상 그의 어머니가 사망을 한 후, 자신의 집에서 혼자 어찌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또한 무척 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에 부딪혀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이때 그의 어머니는 이제 거동조차 할 수 없었지만 정신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종종 나와 전화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리차드는 임박한 어머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처방대로 하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가지고 어머니의 치료를 돕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아무래도 리차드와 그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둔 그녀를 돌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행히 아직 정신이 맑은 그녀의 동의를 얻어 호스피스를 연결 시켜줬다.

한국에도 호스피스 서비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아무래도 가족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리라.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미국에서는 죽음이 다가온 사람들이 참 여러가지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한국보다 많다.

예를 들어 밥을 먹여준다든지 목욕을 시켜준다든지 약을 챙겨준다든지 변을 치워준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가족이라면 이런 일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 같지만 이게 굉장히 힘들다. 더군다나 죽음을 앞둔 당사자들은 이런 일들로 가족의 부담이 되는걸 싫어하는 성향도 강하다. 바로 이런 일들을 호스피스가 해준다. 호스피스들은 그런 일들을 전문적으로 하기 때문에 당사자나 가족들의 부담 또한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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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호스피스들이 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일은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는 일이다. 호스피스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리차드의 어머니를 돌보게 된 호스피스 또한 참을성이 많았고 자비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리차드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일들을 호스피스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호스피스를 면전에서 비난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리차드의 어머니는 호스피스가 곁에 있게 된 이후부터 몸과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며 고마워 했다.

하루는 리차드가 호스피스를 바꿔달라며 내게 전화를 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호스피스가 어머니 병상 앞에서 가족회의를 하자며 저와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세상에… 장례절차에 대해서 의논을 하자더군요. 그 여자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나는 호스피스들이 하는 일들을 잘 알고 있다. 죽음을 앞두었지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가족과 자신의 장례절차에 대해서 의논하는 가족미팅은- 리차드의 말대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무척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함께 눈물로 장례절차에 대해 의논하면서 서로 죽음에 대해서 더 좋게 받아들이고 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준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가족들이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의 투병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해보면 바로 호스피스가 주관해준 장례에 대한 가족미팅이었다고들 이야기 할 정도로 그런 미팅에 대해서 무척 감사해 한다.

나는 리차드에게 솔직히 이야기 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원하는 일을 해주는 일이야말로 후회가 덜한 일이니 어머니가 동의하고 소망하는 일이라면 호스피스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이다.

4bb-s.gif 어머니의 죽음


본의 아니게 나는 그녀의 임종 순간에 거기에 있었다. 그의 테라피스트로써 앞으로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줘야 할지에 대해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했고, 담당의사와 함께 한번쯤 그녀의 병상을 방문해도 좋다는 디렉터의 허락을 받았다.

의사와 함께 리차드의 가족이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아왔던 아파트에 도착했다. 리차드가 우리의 방문을 고마워하며 문 앞에서 반겼고 영어가 서툰 그의 아버지는 뻘쭘하게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방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한 여자가 나왔다. 호스피스였다.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리차드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눈치로 무슨 뜻인지를 알아들었던 그의 아버지는 황급히 방으로 달려갔고 호스피스도 그 뒤를 쫒아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리차드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어찌나 힘있게 잡았던지 호스피스는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뭐라고 했어! 당신 식대로 하면 내 어머니가 죽을 거라고 했지?”

그때 내가 끼어들며 말했다.

“리차드.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나하고 합시다. 당신 지금 빨리 방으로 들어가야 해. 어머니한테 마지막 인사를 빨리 하란 말이요.”

나는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의 뒤로 호스피스가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의사와 나는 거실에서 임종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그 신비하고 소중한 마지막 시간… 그건 가족들의 몫이었다. 임종의 뒷수습까지 해줄 호스피스가 곁에 있어서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호스피스의 안전을 위해 의사와 나는 숨을 죽이고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 10분 정도가가 흘렀나… 방에서 호스피스가 슬픈 표정을 하며 먼저 나왔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매번 임종을 경험하면서도 항상 힘이 드네요…”

내 옆에 서있던 의사가 그녀를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 말밖에 할말이 없네요.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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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의 아버지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말없이 부엌 쪽으로 가더니 힘없이 쭈그리고 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방에서 리차드가 나왔다. 리차드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차가웠다. 눈물은 한 방울도 보이지 않고, 나를 보며 미소까지 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현재의 상황과 관계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수많은 목소리들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와 나는 잠깐 동안이지만 리차드를 감금병원에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했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지나고 충격이 가라앉자 리차드의 정신분열증 증상도 차차 줄어들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동료교수들과 러시아인들이 참석했다. 한 유명한 러시아 시인은 러시아어로 망자를 위해 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관이 땅속으로 들어갈 때 알아듣기 힘든 말로 리차드가 고함을 질렀다.

.
.
.

리차드 어머니의 장례식이 있은 지 두 달 정도가 되어간다. 나는 리차드와의 세션을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렸다. 매번 리차드는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간다.

어머니의 임종 전에는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해서 글로 쓰라는 숙제를 내줬었고, 또 그러한 글을 어머니가 편지형식으로 받아보고 감동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기억들이 흐뭇하거나 추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어머니를 잃은 그에게 위로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생전에 그에게 사준 집에서 원수처럼 지내던 아버지와 살기로 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비난도 줄어들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바보 같은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는 비난과 원망 같은 말들도 어머니의 장례 이후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진심으로 슬픔을 공유할 사람은 두 사람뿐임을 알았던 게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는 서로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경쟁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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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두 사람은 물과 불같은 사이다. 거기다가 리차드는 강한 정신분열증, 그의 아버지는 약한 정신분열증을 공유하고 있다. 두 사람모두 사실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그의 아버지 고령의 노인이다. 하지만 싫어했던 아버지라도 얼마나 오래 함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고, 앞으로 리차드가 세상에서 완전히 외톨이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현재 그는 감금병원에 2주째 들어가 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많이 지친 상태에서 정신분열증 증세가 심해져 참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그곳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퇴원할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장례식에도 여러 번 갔고 그 가족들과의 상담도 많이 했다. 또한 지금까지 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죽음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의 기복이 없이 점점 둔감해져 가는 나 자신이 조금 걱정된다.

“매번 임종을 경험하지만 항상 힘이 드네요”

리차드의 어머니를 돌보던 호스피스처럼, 나도 그녀 같은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리차드 어머니의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항상 궁금했던 게 있었다.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리차드에 관한 두 편의 글을 보두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사실 그녀의 인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알 것이다. 그런 인생경험을 했던 그녀는 죽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지냈을까?

내게는 한가지 믿음이 있다.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극복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세상과 자신을 포기하고, 순간을 참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혹은 세상이 싫어서 빨리 죽는 날만 기다리는 그런 경우를 죽음에 대해 극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죽음에 대한 극복은 세상을 사는 동안 충만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 죽음에 대한 심리적 극복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은퇴준비는 하지만 100% 경험하게 되는 죽는 준비는 하지 못한다.

나는 매번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아직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까?

dot3.gif정신분열증 시리즈


33. 정신분열증 이야기- 리차드의 고뇌

35. 정신분열증 이야기-악마의 폭행

36. 정신분열증 이야기-바보같은 그녀 #1

37. 정신분열증 이야기- 바보같은 그녀#2

39.정신분열증 이야기 - 헨리의진실 #1

41. 정신분열증이야기- 헨리의 진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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